들뜬 스키퍼의 목소리는 그의 외출을 한껏 노래하는 것 같았다. 셔츠 깃을 접으며 가뿐한 미소를 거울에 비추어본다. 한 달에 몇 번 세어도 열 손가락이 무색한 데이트가 이제야 오늘로 다가와 어깨까지 들썩여졌다. 그리고 그 콧노래를 코왈스키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좋은 대장이 못마땅해진다는 것은 그에게서도 수긍할 거리가 아니었으나 이 콧노래의 주인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듯 코왈스키 또한 그랬다. 그의 아랫입술은 그가 모르는 아주 작은 단위로 비죽 나왔다. 하지만 곧 그보다 대장의 입술이 억울할 정도로 나와 있게 되었다. 눈썹은 팔자로 휘어져 그가 보는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역시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스키퍼의 데이트가 취소되었다.
그 연락을 손에 쥐고 잔뜩 시무룩해진 대장을 보았지만 코왈스키는 왠지 올라가는 입꼬리가 민망해져 입술을 깨물었다. 스키퍼는 서늘할 정도로 텅텅 비어버린 기대를 어쩌지 못했다. 그저 그 속상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한숨 같은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사람을 굴려도 정도가 있지, 응? 어떻게 쉬지를 못하게 만드느냔 말이야. 눈썹은 금세 찌푸려졌고 그는 괜히 핸드폰을 꾹꾹 눌러댔다. 코왈스키는 표정을 가다듬고 대장의 옆에 슬쩍 다가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 그럼 저희 영화 보는 데에 같이 가시렵니까? 스키퍼는 생각하는 얼굴을 보였지만 이내 그럴 이유도 없이 간단히 답을 내렸다.
“아니, 나이젤한테 가야겠어.”
그의 배가 익숙한 소리로 꾸륵 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이젤은 바쁜 몸이었다. 그에겐 언제나 발에 치일 정도로 넘치는 일이 있었고 그 수많은 임무와 업무는 곧 유능한 그가 이번 일주일 동안 해치워낸 성과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오늘의 하루를 온전히 얻어냈건만 그는 도저히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젠장할. 나이젤은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랑하는 연인을 한 번이라도 더 봐야할 시간에 몸져누워버린다는 건 몹시 억울한 일이었다. 애도 아니고, 컨디션 조절 실패는 정말이지 열이 오를 정도로 한심해서 그는 평소에 챙기지 않던 약까지 챙겨먹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이젤은 핸드폰을 향해 눈을 데굴 굴렸다. 이 상태로 만났다간 스키퍼에게 병을 옮기게 될 것이 분명했다. 혹은, 스키퍼가 쓰러진 자신을 옮기던가. 나이젤의 녹색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그 작은 몸의 스키퍼를 떠올리니 더욱 끔찍해졌다. 그는 연인의 기다림을 망치기 전에 연락을 주기로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열로 인해 어찔한 정신을 하고 잠깐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몸 상태를 보고하길 그만두고 추가임무라는 지긋지긋한 단어를 써두었다.
“나이젤?”
도착한 스키퍼는 스페어 키를 쓰자마자 오랜만에 만난 연인의 이름을 당황스럽게 불러야 했다. 분명 업무를 보러 나가있을 그를 간단하게 놀래기 위해 그의 집에 먼저 가있는 것이 스키퍼의 계획이었는데. 그랬는데, 스키퍼는 한참이나 그의 침대 맞은편에 서서 나이젤을 경우 없던 표정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문자로 업무가 있다며 사과하던 그가 침대에 누워 꼼짝 없이 앓고 있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뱃속직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신뢰를 쌓았다. 코왈스키가 듣는다면 위장의 수축 소리일 뿐이라 하겠지만 그 과학자도 지금 나이젤의 요 지경을 보고선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나이젤은 잔뜩 쉰 목소리로 스키퍼에게 인사라도 건넸다. 그리고 그것을 받은 그의 표정은 걱정과 놀란 기색에서 점점 대원들을 혼낼 때의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하…. 미안하네.”
스키퍼의 입술은 나이젤의 문자를 받았을 때보다 더욱 뾰로통하게 나와 있었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사과를 받자 더욱 속이 상했다. 나이젤 그가 자신에게 약속취소를 문자로 할 리 없단 걸 스키퍼는 그제야 생각했다. 목소리가 이러니 그랬을 것이란 생각까지 들자 한숨이 제대로 나왔다. 스키퍼가 눈을 흘겼지만 나이젤은 미안할 뿐이라 그저 웃었다. 그의 이마를 짚으며 열을 재어본다. 그리고 놀랄 만큼 더운 손바닥을 떼어 스키퍼는 당장에 약을 찾으러 나섰다.
예약 취소한 식당엔 이제 사람들이 붐빌 시간이었다. 침대가의 창에는 꽤 예쁜 햇살이 들어왔다. 나른한 볕을 받으며 두 사람은 서로 따뜻한 품을 빌려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눈을 뜨면 곤히 잠든 스키퍼가 보인다는 사실이 나이젤을 행복하게 했다. 연인이 사온 치킨수프는 가기로 했던 식당보다 달콤했고 그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자신을 놀래기 위해 찾아왔었다는 귀여움도 좋았지만 옆에 꼭 붙어 챙기어주며 함께 있어준다는 것은 햇볕보다 따사로운 사랑스러움이었다. 마침 품에 안겨있던 스키퍼가 고개를 움직였다. 뺨과 입술이 눈에 띄었다. 지금의 기분으론 온몸에 입맞춤을 하며 끌어안고 싶었지만, 지금의 몸으로는 병을 옮기게 될까가 걱정이었다. 나이젤은 작게 침을 삼키고 연인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키스했다. 작은 쪽 소리와 입술을 떼면 견디지 못하게 사랑스럽고도 아쉬운 기분이 몰려와 몇 번을 입 맞추었다.
기분 좋은 간지러움이 이마에 맴돌자 스키퍼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이젤이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하고 있었다. 그의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며 스키퍼는 잠결이 담긴 목소리로 고개를 들었다. 안 자고 있었어요? 그리고 바로 그 앞에 나이젤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두 입술이 닿을 듯 하는 거리만을 두었다. 어느 누가 살짝 고개를 움직여도 포개질 것 같은 느낌에 나이젤의 몽롱한 머리가 몸을 먼저 움직이게 두어버린다. 연인의 입술과 맞추기 위해 입을 작게 벌리다 나이젤은 멈칫거렸다. 그리고는 침을 꾹 눌러 삼기며 느릿하고 녹진한 키스를 바랐던 입술은 그저 이마에 다시 앉았다. 스키퍼는 나이젤의 표정에 곧장 눈을 살풋 감았다. 하지만 긴장하고 있던 입술에 들리지 않고 이마로 닿자 조금은 애탔던 입이 삐죽인다. 스키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이젤의 녹안에 담긴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연인의 두 뺨을 작은 손으로 잡고 키스했다.
구누님의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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