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을 닮은 햇살이 머무는 아침에 스키퍼는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지난밤 따라 고맙게도망고를 모조리 불태워버리겠단 협박을 똑똑히 들어준 이웃사촌 덕에 특공대는 드물게 상쾌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스키퍼를 좇아 함께 아름다운 아침을 만끽하는 대원들은 유난히 따사롭고 편안한 인상의 대장을 보며 햇살보다 더욱 마음이 간질거리고 포근해졌다그들은 오늘이 정말로 괜찮은 하루가 될 거란 걸 의심하지 않았다그리고 그 이상으로 스키퍼는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근사한 아침이네 제군들기분이니 오늘 저녁은 내가 책임지겠네.”


시원하고 맑던 아침 공기가 금세 탁해져 숨을 막히게 만들 것 같은 소식이었다그들은 놀라 숨을 멈췄다가 얼른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대장이 돌아보기 전에야 겨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연기를 시작했다그가 요리를 준비하겠다는 상냥한 말에 방금 전의 구겨진 표정을 갖다 댈 순 없었다코왈스키는 옆의 둘에게 속삭였다큰 건이야리코는 작게 끄덕였고 막내는 실 없이 웃는 표정으로 앓는 소리를 내었다.



 

간단한 점심을 끝내고 쓸 만한 저녁 재료를 찾는 스키퍼에게서는 들뜬 콧노래가 넘실거렸다벌써부터 부엌을 장악한 그 덕에 대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요리가 한번 차려지면세상 누구보다 가장 화사하게 웃는 대장의 미소를 보고는 그것을 입에 넣지 않을 방도는 없었다그들의 아주 오래전 회의 결과로 선택된 코끼리 발바닥이란 표현이 들어맞는 맛이다대장의 요리는 단결 주간의 훈련보다 더욱 단결을 이루게 하는 수준이었다가라앉은 표정의 대원들이 작은 소리로 사태의 심각성을 논의했다좀처럼 별다른 수가 나오지 않는 것이 대장의 흥얼거림을 더욱 고통스러운 소리로 들리게 할 뿐이다코왈스키의 약물을 이용한 단체 배탈은 이미 두 번쯤 써먹었는데다그것대로 끔찍한 하루였다주방을 폭파시키자는 건 리코의 생각이었는데 그랬다간 가스폭발로 근방이 전부 불바다가 될 것이 훤했다프라이빗과 코왈스키가 물론 세차게 도리질을 했으니 망정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각자 괜찮은 작전을 가져오자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전까지.”

오케.”

…….”

프라이빗?”

좋은 생각이 났어일단 미안해!”


막내는 어쩐지 입꼬리가 슬금슬금 위로 올라가선 배시시 웃어버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남은 둘은 얼떨떨한 눈빛으로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궁금증에 못 이겨 프라이빗을 따라 대장이 있는 부엌 가까이에 다다른다프라이빗이 대장의 앞에 서서 살구빛 뺨으로 단어를 입속에 넣고 우물거렸다그 묘하고 이상한 분위기와 막내가 먼저 말했던 미안하단 소리가 신경이 쓰인다코왈스키와 리코는 미간을 좁혔다용건을 되묻는 대장에긴장한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그들의 귀에까지 들려온다.


대장님저와 저녁 식사하러 나가시지 않겠어요?”

?”

그러니까저희 둘 만이요…….”


코왈스키는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철썩 내리쳤다저게 무슨 헛소리람그는 막내의 순진한 소리 목록을 불태울 법한 방금 전의 말들로 괜스레 불쾌해졌다저것으로 오늘의 큰 건을 해결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스키퍼가 순순히 프라이빗을 따라 둘만의 저녁을 갖는 상상은 석연치 않았다절대로그는 막내의 작업에 놀라 눈만 깜빡대는 대장의 대답에 긴장하며 입을 꾸욱 다물었다.

 

푸하하안 되지 안 돼식사 약속도 좋지만 오늘은 내 요리를 먹어야 하지 않겠나프라이빗?”

맞다그러게요하하!”


좋아실패했다코왈스키는 속으로 외치고서도 본인의 안색이 파리해지는 기분을 느꼈다프라이빗이 실패했다……리코가 좋은 수를 생각해낼 확률은 아주 적으니 큰 건의 대비책이 줄어들은 셈이었다저녁의 공포에 짓눌려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이대로는 대장의 환한 미소를 두고서 속에서 올라오는 역함을 견뎌야 하는 저녁을 피할 수 없다그의 뛰어난 머리는 과부하로 기긱 거리며 열이 나는 것 같았다저녁시간까지는 아직 네 시간이 남아있었다그의 대장이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소란조차 없는 아주 고요한 날코왈스키는 결정을 내리고 얼른 자신의 코트를 찾았다.




리코와 프라이빗만이 남아 끔찍한 큰 건에 맞서야 했다코왈스키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그들을 뒤로하고 혼자 도망쳐 버린 것이 아닐까 두 대원은 이를 갈을 생각이었다프라이빗의 당돌함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서 리코의 무모함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대장의 요리로 본분을 마감할 식료품을 미리 먹어치우는 것참으로 리코다운 결정이었다조금 단순한 그들에겐 상당히 들어맞고도 어쩔 수 없는 그 선택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재료가 없어지면 대장이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순차일 테니 되도록 할 수 있는 양만큼 처리해야 했다리코는 가장 눈에 띄는 생선들로 시작해 유제품이나 육류까지그가 꺼리는 채소들은 쉽게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는 쓰레기통에 자리 잡았다스키퍼가 물으면 공복 때문에 저녁을 기다리기 어려웠다고 한창 대사량이 넘칠 젊은 기운을 뿜으며 얘길 하면 될 테다대장이 전혀 구분하지 못한 채 사용할 법한 몇 소스들은 과학자의 실험실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아마 그가 실험을 하다 모르던 걸쭉한 액체가 나오는 걸 그때야 알아챌 것 같은 실로 완벽한 위장이었다모든 음식들을 다 처리하긴 어려웠으니 애꿎은 남은 재료들은 잠시 내쫓김을 당하거나 침대의 아래에 조심스럽게 감춰져야 했다언제 돌아왔는지 코왈스키는 침대 밑에 엎드린 그들의 기이한 행동에 눈썹을 꿈틀거렸다혹시 대장일까 깜짝 놀란 막내가 머리를 부딪치고 눈물을 찔끔댔다둘은 이 중요한 시간에 자리를 비운 코왈스키를 탓하다 자랑스레 더부룩해진 숨을 내쉬었다.


이제 걱정 없어리코와 내가 몽땅 처리했으니까!”

어쩐지 텅텅 비였더라니그래서 다시 채워 넣었어.”


장을 좀 봐왔거든프라이빗과 리코의 눈앞이 새하얘져 크게 뜨여졌다둘의 입은 충격적인 만큼 벌어져 막내는 멍청한 과학자의 이름을 크게 소리쳤다리코는 벽을 짚고 서서 좀 전까지 쑤셔 넣었던 것들을 게워내 버릴 것만 같았다당장에라도 눈앞의 원수를 응징할 표정의 군인들 앞에서 코왈스키는 대수롭지 않게 굴었다그가 어서 잘난 입을 열지 않았담 어쩌면 곧 리코가 냉장고를 집어던질지도 몰랐다그리고 평소의 명석한 작전과 달리나온 말들은 프라이빗과 리코의 분노를 잊게 할 말끔한 해결책이 아닌 것 같았다내가 함께 요리할 거야.


코왈스키도 요리 못하잖아!”

마저마저못 해요이 못 해!”

나도 알아그리고 못 한다는 말만 제대로 발음하지 마!”


미덥지 않다는 눈빛으로 잔뜩 쏘아보는 둘에게 입을 비죽이며 코왈스키는 이것이 억지가 아님을 설명하려 했다물론 억지라고 해도 상관없었다그는 자신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피하지 못한다면 최대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설명과 논리에 익숙한 전략가이자 과학자에게 이 정도의 상황을 유리하게 설득하는 건 주기율표 순서를 이해시키는 것만큼 쉬웠다물론 설득되지 않아도 좋았으며그들은 멍청한 군인이었기에 주기율표의 순서를 이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둘은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내가 해도 되는 거네코왈스키보단 내가 낫지!”

아냐내가 할래리코가!”

소용없어이미 대장님께 말씀드렸거든.”


그래서 너희들 의견은 필요 없지호쾌하게 웃으며 멀어지는 그의 뒤를 리코와 프라이빗은 겨울바람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오한을 느끼기엔 코왈스키는 그의 썩 괜찮은 작전에 감탄하며 스키퍼와 함께 할 시간을 기대하기 바빴다대장에게 두 어린 대원을 위한 저녁을 함께 만들겠다는 말은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다기특한 소리를 할 줄 안다며 등짝을 험하게 두들겨 준 것에 코왈스키는 안도했다절대 코끼리 발바닥과 같은 맛은 나오지 않겠지만 혹여나 먹기 괴로운 것이 되더라도 서투른 과학자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었다사실 피할 수 없는 이상 대장과의 시간을 즐긴다는 목적이 컸긴 했지만 저 둘에겐 알게 뭔가.




그가 외출에서 준비해온 봉투를 열고 콧노래를 불렀다대장의 앞에 가져다 대며 잔뜩 즐거워진 얼굴을 한다스키퍼는 부관이 그를 위해 사 왔다는 것을 보고 난감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분명 리코가 쓰던 것은 그에겐 조금 크고 길었지만 충분히 쓸 수도 있을 텐데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에 힘을 주는 대장을 보고 코왈스키는 천연덕스러운 눈으로 웃었다.


요리의 기본은 앞치마 아닙니까?”

그래그렇지만.”


자네 손에 들린 그 요사스러운 천 떼기는 조금……안타깝게도 이런 모양 밖에는 팔지 않았단 거짓말을 여유롭게 하며 코왈스키가 대장의 허리춤에서 크고 오래된 앞치마의 끈을 풀었다분홍색도 있던데차라리 그게 나았을까요여전히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에 대고 얘길 하자 소스라치게 도리질을 한다새하얀 앞치마가 하늘거리는 앙증맞은 프릴과 함께 스키퍼의 어깨에 앉았다혼자서는 등 뒤의 끈을 묶기 불편해할 그를 위해 코왈스키가 섬세한 손으로 예쁜 나비를 만들어주었다물론 그의 대장은 전혀 알 리 없었다사온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스튜를 위해 부관이 냄비를 꺼낼 쯤에 기분이 몹시 상한 대원들이 주방으로 쳐들어왔다.


대장님저희도!”

하하자네들도 도우려고요리를 대접받을 사람도 필요하니 가서 앉아있게.”


의기투합한 마음으로 대장의 앞에 선 그들은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사분사분한 얼굴로 웃어 보이는 스키퍼와 앞치마의 너무나도 조화로운 모습에 혹시 그들이 알던 부대의 대장이 맞는지 고민을 들게끔 했다그리고 눈앞의 천사는 대답을 놓칠 만큼이나 대원들을 달뜨게 만들었다오늘은 그의 요리가 정말로 맛있을지 모른다는 환상을 아주 잠깐 하게 될 정도로.


와 세상에…….”


봤어리코대장님 정말 귀여우셔리코는 눈을 떼지 못했고 대답 대신의 작은 끄덕임으로도 프라이빗은 그의 강한 긍정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두 청년들은 과학자의 작품에 그를 조금은 용서하기로 했다.




스키퍼의 요리를 보조하는 코왈스키는 제일 먼저 대장의 손에 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바빴다도대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쥔 채 바삐 움직이며 몽땅 넣어버리는 통에이젠 냄비 안에 든 액체의 맛을 보는 것조차 겁이 났다생선의 손질은커녕 호탕하게 칼을 쥔 채 정확히 네 토막으로 내려치는 그 모습은 코왈스키 그가 고등어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길 정도였다대장이 버터를 그대로 끓는 물속에 넣어버리는 순간 코왈스키는 먹을 수 있는 요리로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코끼리 발바닥 맛을 내는 법에 대해 연구하기로 했다그래도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넣고넘칠 때까지 끓이는 것은 막았으니 부관 나름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그렇게 코트리아드 스튜가 되길 원했던 요리는 식탁에 올라갔다대장을 제외하고 굳게 마음을 다잡은 셋은 어쩔 수 없이 혀를 고문하게 되었다모두의 표정이 굳는다.


맛이…….”

맛이 없군코왈스키자네는 앞으로 요리 같은 거 하지 말게.”


과학자가 대장의 미각을 언젠가 꼭 탐구해보리라 다짐했다프라이빗과 리코는 기다렸다는 듯이 코왈스키의 솜씨를 흉보며 거리낌 없이 거절을 했고결국 그들의 요리는 코왈스키의 또 다른 실패작으로 당당히 버려질 수 있었다그 묘하게 억울하고 사무치는 마음을 그래도 스키퍼가 느끼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대장의 앞치마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코왈스키는 망한 요리를 앞에 두고 흐뭇하게 웃었다.




어린 두 대원들을 일찍이 방에 보내버리고 대장과 코왈스키가 남아 식탁과 접시들을 정리했다여전히 앞치마를 맨 채로 남은 끔찍한 스튜를 처리하던 스키퍼는 눌어붙은 자국을 긁어내느라 몰두한 것 같았다코왈스키는 설거지를 맡아 식기에 거품을 내며 대장을 흘끗 쳐다보았다또다시 둘만 남은 부엌에 기분이 간질간질 거린다묘하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에 코왈스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대장과 나란히 앞치마를 매고 선 것이 즐거웠던 그의 엉성한 농담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하이렇게 있으니 대장님과 제가 부부 같지 않습니까?”


코왈스키는 순식간에 스키퍼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보았다그의 웃기지도 않는 말이 진지하게 느껴졌는 듯 대장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냄비를 집요히 괴롭히던 것도 멈추었다그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당황스러운 코왈스키마저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모습에 접시를 미끄러뜨렸다개수대에 접시가 요란스레 누워버린 소리가 들리고 스키퍼가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잔뜩 부끄러워하는 귀 끝이 코왈스키의 눈에 박혀 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정적을 참지 못한 예민한 대장이 앞치마를 벗어 던져버리고 서둘러 달아났다자신의 괜한 소리에 저리 붉히는 대장님이라니……그의 뺨마저 뜨거운 열이 돈다코왈스키는 남은 부엌일을 모조리 차지하게 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아니신경 쓸 새도 없었다머릿속에서는 대장의 새빨갛고 긴장한 표정만이 가득했다코왈스키가 소란스러운 심장을 견디지 못하고 미끄러져 앉았다세상에세상에그가 개수대의 접시에게 속삭이며 더운 눈을 꼭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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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판다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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