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저녁이었다. 아끼는 머그에 커피 한 잔을 담아 그는 기지의 발코니로 나온다. 벌써 제법 빠르게 저무는 해가 남기고 갔던 찬 공기에 숨을 내쉬었다. 뉴욕하늘에 별이 보일 리가 없었다. 매캐한 공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들의 지하기지가 딸린 작은 주택이 낮아, 높은 빌딩들이 하늘을 가렸던 이유도 있었다. 꼭 별만이 그를 여유롭게 만들지는 않았기에 그에겐 따뜻한 커피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시간에 커피가 어울리지는 않는다며 걱정스런 미간을 보일 대원이 생각나서 스키퍼는 작게 웃었다. 유독 자신의 불면증에 신경을 써주는 고마운 녀석이었다.
그리고 등 뒤에 포근한 손길이 내려온다. 코왈스키는 겨울용 담요로 대장의 어깨를 감쌌다. 스키퍼는 자신의 옆에 와 서는 그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밖으로 두었다. 생각을 했더니 바로 다가와 있는 것이 몹시 놀라웠다. 그건 이 부관의 이상한 능력이기도 했다. 이름 네 자만 부르면 척하고 원하는 답을 주는 건 보통이었고, 가끔은 부르려는 입을 떼기도 전에 먼저 이쪽을 보며 대장님, 하고 말했다. 이젠 조금 으슬으슬해지는 기운을 느낄 새도 없이 이렇게 담요를 가져오곤 빙긋 웃는다.
그것이 코왈스키의 관심 덕이란 것을 모르는 게 어려웠다. 보통 주시하고 있지 않고서야 너무나 완벽하게 맞춰줄 리가 없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짙고 또 깊은지 스키퍼는 가끔가다 살짝 보이는 표정에 놀라곤 했다. 본인에게도 부담스러울 법하건만. 하지만 그의 표현이란 이렇게도 잔잔히 다가와 그저 자신을 편하게, 그렇게 만들어주기만 했다. 스키퍼는 옆에 있는 그 코왈스키의 눈을 보았다. 가만 자신을 보다가 눈을 맞추니 미소를 지어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묻는 상냥한 얼굴이다.
스키퍼는 내키는 대로 눈을 바라보고 싶었다. 곧 대답이 없는 대장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으로 시선을 비켰다가 다시 맞춘다. 차라리 모른 척을 할 수 있었다면, 대장은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까지 마주쳐있는 눈이 두 사람 다 새파랗다. 코왈스키의 스스로 그 관심에서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럼 이 일이 좀 더 쉬웠을 테였다. 스키퍼는 고단해져 내려앉는 눈을 감았다. 골목사이로 바람이 부는 소리가 아직은 얕았다. 저 멀리서 퍼드득 날아드는 새의 날갯짓도 들렸다. 아주 따뜻하고 가벼운 촉감이 입술에 닿는다. 그리고 재빨리 사라졌다. 스키퍼는 눈을 떴다. 방금 전 그게 식은 컵이라고 해도 됐을 텐데. 부관은 그럴 수 없었는지 발개진 얼굴을 한 채 손으로 입을 가렸다. 곧 그가 다물었던 입으로 말했다.
“저는, 그게, 대장님을…….”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뒷얘기는 잠시 뒤 분명하게 들렸다. 스키퍼는 고개를 밖으로 돌렸다. 코왈스키는 난처해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대장을 찬 공기에 두고 혼자 들어오기 싫었다. 다음날이면 다시 함께 서있지 못할 것 같았다. 차라리 별이라도 보이면 좋았을걸. 코왈스키가 고개를 숙였다. 스키퍼는 다른 얘길 했다. 마침 별 얘기가 나와 겨울 휴가로는 다함께 한적한 시골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소소한 얘기뿐이었다. 그렇게 둘은 몇 대화를 나누고 아무 일도 없이 발코니의 문을 잠갔다.
코왈스키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 많은 생각이 쏟아졌다. 머그를 부엌에 내려둔 대장은 부관의 침실로 다가섰다. 코왈스키는 그의 발소리를 들었지만 밤 인사는 할 수 없었다. 스키퍼는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직까지 자신의 어깨에 올린 두터운 담요를 부관의 이불 위로 덮어 잠자리를 봐주었다. 무어라 속삭인다. 그리고 입을 맞췄다. 코왈스키는 돌아눕지 않고선 그대로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코왈스키도, 그의 대장님도 모른다는 듯 굴기에는 담요는 두꺼운 만큼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