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

전력 2016. 10. 23. 00:41


바람이 부는 저녁이었다아끼는 머그에 커피 한 잔을 담아 그는 기지의 발코니로 나온다벌써 제법 빠르게 저무는 해가 남기고 갔던 찬 공기에 숨을 내쉬었다뉴욕하늘에 별이 보일 리가 없었다매캐한 공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들의 지하기지가 딸린 작은 주택이 낮아높은 빌딩들이 하늘을 가렸던 이유도 있었다꼭 별만이 그를 여유롭게 만들지는 않았기에 그에겐 따뜻한 커피만으로도 충분했다이 시간에 커피가 어울리지는 않는다며 걱정스런 미간을 보일 대원이 생각나서 스키퍼는 작게 웃었다유독 자신의 불면증에 신경을 써주는 고마운 녀석이었다.

 

그리고 등 뒤에 포근한 손길이 내려온다코왈스키는 겨울용 담요로 대장의 어깨를 감쌌다스키퍼는 자신의 옆에 와 서는 그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밖으로 두었다생각을 했더니 바로 다가와 있는 것이 몹시 놀라웠다그건 이 부관의 이상한 능력이기도 했다이름 네 자만 부르면 척하고 원하는 답을 주는 건 보통이었고가끔은 부르려는 입을 떼기도 전에 먼저 이쪽을 보며 대장님하고 말했다이젠 조금 으슬으슬해지는 기운을 느낄 새도 없이 이렇게 담요를 가져오곤 빙긋 웃는다.

 

그것이 코왈스키의 관심 덕이란 것을 모르는 게 어려웠다보통 주시하고 있지 않고서야 너무나 완벽하게 맞춰줄 리가 없었다그 마음이 얼마나 짙고 또 깊은지 스키퍼는 가끔가다 살짝 보이는 표정에 놀라곤 했다본인에게도 부담스러울 법하건만하지만 그의 표현이란 이렇게도 잔잔히 다가와 그저 자신을 편하게그렇게 만들어주기만 했다스키퍼는 옆에 있는 그 코왈스키의 눈을 보았다가만 자신을 보다가 눈을 맞추니 미소를 지어주었다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묻는 상냥한 얼굴이다.

 

스키퍼는 내키는 대로 눈을 바라보고 싶었다곧 대답이 없는 대장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으로 시선을 비켰다가 다시 맞춘다차라리 모른 척을 할 수 있었다면대장은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아직까지 마주쳐있는 눈이 두 사람 다 새파랗다코왈스키의 스스로 그 관심에서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면그럼 이 일이 좀 더 쉬웠을 테였다스키퍼는 고단해져 내려앉는 눈을 감았다골목사이로 바람이 부는 소리가 아직은 얕았다저 멀리서 퍼드득 날아드는 새의 날갯짓도 들렸다아주 따뜻하고 가벼운 촉감이 입술에 닿는다그리고 재빨리 사라졌다스키퍼는 눈을 떴다방금 전 그게 식은 컵이라고 해도 됐을 텐데부관은 그럴 수 없었는지 발개진 얼굴을 한 채 손으로 입을 가렸다곧 그가 다물었던 입으로 말했다.

 

저는그게대장님을…….”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뒷얘기는 잠시 뒤 분명하게 들렸다스키퍼는 고개를 밖으로 돌렸다코왈스키는 난처해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대장을 찬 공기에 두고 혼자 들어오기 싫었다다음날이면 다시 함께 서있지 못할 것 같았다차라리 별이라도 보이면 좋았을걸코왈스키가 고개를 숙였다스키퍼는 다른 얘길 했다마침 별 얘기가 나와 겨울 휴가로는 다함께 한적한 시골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소소한 얘기뿐이었다그렇게 둘은 몇 대화를 나누고 아무 일도 없이 발코니의 문을 잠갔다.

 

코왈스키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 많은 생각이 쏟아졌다머그를 부엌에 내려둔 대장은 부관의 침실로 다가섰다코왈스키는 그의 발소리를 들었지만 밤 인사는 할 수 없었다스키퍼는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그러다 아직까지 자신의 어깨에 올린 두터운 담요를 부관의 이불 위로 덮어 잠자리를 봐주었다무어라 속삭인다그리고 입을 맞췄다코왈스키는 돌아눕지 않고선 그대로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코왈스키도그의 대장님도 모른다는 듯 굴기에는 담요는 두꺼운 만큼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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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판다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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