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에겐 장미꽃다발이 어울렸다. 코왈스키가 그 익숙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건 새로운 이웃이 오던 날, 말린이 초대받지도 않은 집들이 선물로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었을 때였다. 그녀는 함께 환영을 해주러 가자며 스키퍼에게 장미를 드밀었다. 대장은 새 이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지만 그의 앞에 있는 꽃다발을 그가 들어준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서툰 직감과 늘 계산을 하는 버릇 때문에 대장에게 혼이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그 서운함을 잊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소란스런 환영파티를 끝내고 조금 알코올에 찬 채 코왈스키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 고운 분홍색과 진한 붉은색의 장미가 아직 생각에 띄었다. 대장의 강한 인상에 여름날의 생기 있는 꽃은 상상할수록 그의 시선을 달콤하게 만들어 기분이 좋았다. 마침 오월은 장미가 피어나는 계절이었다. 몇 블록 떨어진 곳의 꽃집에서 손쉽게 근사한 꽃다발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 기간을 두고 또 성의를 쏟아 주문을 넣을 수도 있다. 코왈스키의 몽롱하던 눈이 동그래지고 초점은 확 선명해졌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굴러다닌다. 그는 갑작스레 고개를 빼었다가 어깨 위로 턱을 걸쳤다가, 두리번두리번 하고 손으로 얼굴을 헤집었다.
오, 선물이라니. 그가 생각해도 난데없는 장미다발은 너무했다. 어떤 기념일에 끼어들어도 스키퍼에겐 생뚱맞을 것을, 게다가 코왈스키가 그 품에 안겨주고픈 이유는 그저 장미와 스키퍼가 보기 좋았던 것이 전부였다. 이건 그대로 전해도 이상한 의미가 확실했다. 박식한 부관이 꽃 선물을 생각하며 장미의 꽃말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가 원래의 의도를 표현하지 않는대도 장미가 갖는 이야기를 준다는 것은 너무나 특별한 일임이 확실했다.
그 꽃말이 수류탄이나 무적, 하다못해 필승만 되었어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을 받아드는 스키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스키퍼가 꽃이란 것들이 저마다 뜻하는 의미가 있다는 걸 신경 쓸 리는 없을 테지만 코왈스키는 충분히 술기운이 돌고 있었다. 그가 책상 앞으로 엎어졌다. 꽃다발은 간절하게 주고 싶지만 고백인 마냥 속삭이기는 싫었다. 왜 꽃은 그토록 예쁘기에 대장이 낯간지럽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걸까. 왜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며 스키퍼는 하필 그 꽃이 너무나도 어울리고…. 왜 스키퍼는……. 눈에 예뻤던 걸까.
코왈스키의 머리에는 꽃향기가 가득해졌다. 뺨이 뜨거웠다. 차라리 손을 잡고 꽃밭을 걷는다면, 그는 꿈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