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장은 현관 앞에 서서 옷을 여미고 있다. 그리고 부관이 냉큼 달려 나와 대장에게 장갑을 주었다. 코트 깃까지 꼭꼭 매무새를 가다듬고 따뜻한 목도리를 둘러준다. 새까만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스키퍼가 고맙다는 의미로 코왈스키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코왈스키는 얼른 좌우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는 눈이 없다는 걸 확인하곤 뺨을 내민다. 대장은 킥킥 거리고 웃더니 그 뺨에 키스했다. 함께 나가는 건데, 유난스럽군. 밖에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대장의 입 속에서는 웃음이 샜다. 비척거리고 나온 막내가 잠결이 걸린 목소리로 간만의 외출을 하는 둘에게 인사했다. 스키퍼는 프라이빗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코왈스키가 문을 열었다. 찬 기운이 들어온다. 둘은 기지가 더 추워지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2.
추운 날씨는 그들을 한가롭게 만들었다. 사람이 없는 공원은 녹색 나뭇잎마저 잃어 생기가 없었지만 하얀 입김이 나는 그곳이 둘은 오히려 기뻤다. 그리고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부관은 대장의 손을 잡기 위해 눈치를 보았다. 스키퍼는 부러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코왈스키의 갈 곳 없어진 손이 주먹을 꼭 쥐며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그 어물쩍 거리는 태도에 속으로 작게 웃은 대장은 코왈스키의 팔 안으로 손을 넣어 깍지를 끼었다. 장갑을 낀 두 손이 꼬옥 맞물린다. 기쁘고 간질간질한 웃음이 부관의 얼굴에서 쉽게 사라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괜히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스키퍼는 또다시 웃는다. 차들이 지나가는 거리가 나올 때까지 서로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쉽게 손을 떼는 대신 스키퍼가 시익 웃어준다. 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코왈스키는 익숙하게 가판대에서 커피 한잔을 사왔다. 고개를 까딱거리며 고마움을 표현하고 대장은 그 커피를 받았다. 신호가 켜지고 둘은 길을 건넌다.
3.
만족스러운 점심식사였다. 리코의 요리만큼이나 근사한 도미 파피요트는 대장의 얼굴에서 기분 좋은 미소를 만들었다. 연인의 입에 맞는 식당을 찾은 것 같아 코왈스키는 몰래 기뻐한다. 자네 취향은 찜 요리보다는 구이 아니었나? 코왈스키가 방긋 거렸다. 이것도 일종의 굽는 요리인걸요. 그래? 스키퍼는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 듯 시선을 옆으로 굴린다. 조명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그의 뺨이 발개진 것 같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연인 앞에서 그의 취향이 중요할 리가. 코왈스키는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턱을 괴고서 자신을 바라보는 부관의 모습이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사내라 스키퍼는 기쁨과 함께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런 푹 젖어든 눈으로 얼빠진 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코왈스키는 알고 있을까 싶었다. 평소라면 정신 차리라며 장난스럽게 뺨이라도 때리는 시늉을 하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꽤 괜찮은 노래가 나오고 있었고 맛좋은 음식에, 눈앞의 어린부관은 사랑하는 연인이다. 스키퍼는 행복감에 기분이 간지러워졌다. 그가 입술을 꼭 깨물면서 시선을 올리지 못한다. 코왈스키는 동그란 눈으로 대장을 보았다. 확실히 그의 얼굴이 발갛다. 괜히 부끄러워진 대장을 안아주고 싶어서 그는 몸을 들썩이다 말았다. 안에 있을 때는 얼른 데이트를 하고 싶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어서 기지로 돌아가 대장을 꽉 안고 싶어진다. 하지만 어디든 그의 옆이니 코왈스키도 마냥 좋았다.
4.
눈앞에는 시선을 확 끄는 현란한 스토리와 움직임, 인상적인 인물들로 채워진 스크린이 있다. 대장은 팝콘이 옆에 있다는 것도 잊고 눈을 동그랗게 떠 집중한 채였다. 아니 어쩌면 옆에 있는 연인도 잊은 것 같았다. 코왈스키는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대장과 조금이라도 은밀한 스킨십을 하길 원했으나 그 기회는 이미 넘어가고 말았다. 슬그머니 허벅지를 타던 손을 대장이 단호하게 붙잡았고 코왈스키는 어둠 속에서도 그 무시무시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크게 혼이 난 덕분에 그는 결국 어떤 용기도 내지 못한 채 얌전히 영화를 봐야 했다. 벌써 마지막으로 치닫는 2시간짜리 영화가 이렇게 짧을 수 있나 그는 낙심했다. 모든 것이 터지는 액션 영화를 골랐던 게 문제였던 것 같았다. 대장의 취향을 너무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멜로영화라면 혀를 차고 질색할 위인이었다. 다음에는 뭔가가 터져도 시원찮게 터지는 것을 알아보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너무 무모한 스킨십도 하지 않으리라. 곧 있으면 끝이 나는 이 순간이 이대로는 너무나 아쉬웠다. 코왈스키는 작게 입맛을 다셨다. 그가 손이라도 잡아볼까 싶어 몸을 옆으로 기울이는 순간, 대장이 코왈스키의 넥타이를 당겼다. 두 입술이 깊게 포개진다. 배경으로는 커다란 폭발음과 거대한 불꽃들, 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5.
겨울의 낮은 무척이나 짧았다. 저녁시간 전인데도 날은 어두워져 발걸음을 재촉한다. 좋은 하루를 보낸 코왈스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그러다 눈으로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휘청거린다. 넘어지려는 그를 대장이 붙들었다. 팔을 꽉 잡는다. 코왈스키는 이제 똑바로 설 수 있었지만 대장은 손을 떼지 않았다.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려와 다시 손을 잡는다. 사랑스러운 스키퍼에 부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콩콩 거리는 마음으로 걷다보니 기지가 코앞이었다. 어두운 나무 아래에서 스키퍼가 걸음을 멈춰 선다. 정말 근사한 하루였어. 자네와 있을 때는 언제든 좋지만. 코왈스키의 웃음에 뿌듯함이 담겼다. 스키퍼는 두 손을 뻗어 코왈스키의 뺨을 그러잡았다. 조금 까치발을 세운다. 코왈스키는 고개를 숙였다. 대장이 연인의 입술에 키스했다. 떨어지는 입술을 코왈스키가 다시 맞춘다. 어느새 대장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스키퍼의 입술이 추운공기에서도 발개질 즘에 그는 살짝 밀치어 연인의 품에서 떨어졌다. 자네 성의에 고맙단 인사야, 이 뒤는 들어가서 마저 하지. 스키퍼는 시익 웃었다. 코왈스키는 그 손을 꽉 잡았다. 방금 전 넘어질 뻔 했던 것을 잊고 걸음을 서두른다. 둘 다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핥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스킵 식탁 (0) | 2017.02.04 |
---|---|
코왈스킵 졸음,나긋함,햇빛에 비친 그대의 모습 (0) | 2017.01.29 |
코왈스킵 unsleeping beauty (0) | 2017.01.10 |
코왈스킵 질투 (0) | 2017.01.09 |
코왈스킵 샤워가운 (0) | 2017.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