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스킵 모든 것

핥는다 2015. 12. 12. 22:36


리코는 숨을 쉬었다그가 숨을 쉬는 건 스키퍼를 위해서였다눈짓 하나와 손짓 하나모든 게 그의 대장을 위한 일이 되는 것이다그건 리코가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단 하나의 방식이었다그 외의 것은 찾지도 못할 만큼 절대적이고 또 안정적인숨을 오롯이 쉴 수 있는 법리코가 원한 것은 스키퍼에 의해 사는 것뿐이었다그래서 리코는 그의 앞에서만 숨 쉴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벽난로에 장작을 던지고 스키퍼는 소파에 앉았다커피를 마시며 속에서부터 깊이 아리는 한숨을 뱉는다늦은 밤이 맞이하는 그의 시간은 작은 고민으로 시작되었다단독 임무를 맡게 되어 기지를 하루 동안 떠나 있던 새엉망으로 뜯어진 리코의 손톱을 스키퍼는 발견한 것이다부관에게 전해 듣길 그 못난 손톱의 주인은 자신의 방도 아닌 대장의 방에 틀어박혀 이불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했다그리고 리코가 식사도 입에 대지 않았고 대신 애꿎은 손톱들만 그의 이빨에 넘어갔단 걸 스키퍼는 알 수 있었다이른 오전에 기지에 도착한 스키퍼가 현관의 바로 앞에서 활짝 웃는 리코를 보게 된 것도 그는 기분이 좋질 않았다분명 새벽 내도록 한기를 맞으며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게 대장의 눈에 훤했다.

 

전부터 코왈스키는 리코의 불안증을 문제 삼으며 스키퍼에게 조치가 필요하다는 건의 아닌 요구를 내세웠다그가 리코에게서 조금은 떨어져분리된 채 가지는 시간을 점차 당연하게 느끼도록 만든단 방안이었다스키퍼는 리코와 나누는 서로의 신뢰가 그의 큰 보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가여움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리코는 정말로 자신이 없으면 안 되겠단 것을 깊이 알던 그는 리코의 상황을 보다 안정적으로 변화시켜줄 필요를 느꼈다그의 머릿속엔 리코를 조금씩 떼어내 혼자 지낼 수 있게 할 궁리가 들어왔다스키퍼는 마른 입안을 커피로 적시며 삼켰지만 그가 생각을 마무리 짓기 전에 마신 한 모금보다 맛이 좋지 않았다그저 쓰고 떫었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대장이 새벽을 지새운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리코가 나와 졸린 눈을 비볐다비척거리며 다가와 소파에 기댄 어깨를 뒤에서 끌어안는다스키퍼가 감싸진 리코의 손을 도닥이며 다시 잠에 들자 말했다리코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다.

 

옆에있을 거야.”

 

스키퍼는 리코에게 웃어주었다그의 입꼬리가 살짝 굳어있었다그가 했던 고민이 결코 작을 리가 없었다는 걸 그는 그때 알아챘다.

 

 
 

어떤 오후였다대장은 홀로 임무를 책임지기 위해 대원들을 잠시 떠나야 했다리코는 스키퍼가 또다시 솔로 미션을 수행하는 걸 달가워 할리 없었지만 스키퍼가 대신 리코에게 포옹을 해주었다그리고 그는 리코와 하루가 지나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걸었다코왈스키는 바람이 차다며 대장의 옷깃을 다듬어주었고 막내도 무사히 다녀오시란 말과 함께 그를 뒤에서 꼬옥 끌어안았다스키퍼는 입매를 살짝 올려 미소하고 리코의 상태를 확인했다주인을 잃은 개보다도 서글퍼 보였고 나라를 잃은 군인보다도 절망스러워 보였다스키퍼는 큭큭 거리는 웃음과 함께 리코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곧 다칠 사람 보내는 듯 굴지 말게나는 멀쩡히 다녀올 거야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다팔자로 휜 눈썹을 지으며 비죽 거리고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리코가 스키퍼는 마냥 씁쓸했다그 표정을 두고 갈 수 없을 것 같아 잡은 볼을 늘리자 리코가 곧 겨우 웃었다리코의 웃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스키퍼의 발이 떨어졌다그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려 손을 흔들었다.

 

대장의 임무는 날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기간을 좁혀 늘어나는 것 같았다리코가 그렇다고 어눌한 얘기를 꺼내면 코왈스키는 고개를 저었고 프라이빗은 그냥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리코는 손가락을 꼽았다그건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니라 늘어나고 있는 일이었다대장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개인 직무나 중요하다는 단독 임무를 나갔고 그 숫자를 세다 말고 리코가 주먹을 꽉 쥐었다그리고 우우 거리는 우는소리를 내뱉었다코왈스키는 그의 홀더를 확인했다스키퍼를 위한 임무는 주기가 짧아져 일주일에 한 번길게는 나흘 동안 떠나있었고 곧 닷새에 한 번 기지를 나왔다리코는 비어있는 스키퍼의 방으로 들어갔다대장이 없는 기지는 오직 그곳만이 그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스키퍼의 냄새가 섞인 이불에 파묻혀 그가 훌쩍거렸다그리고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리코는 대장이 그를 두고 홀로 가버리는 것이 싫었지만 스키퍼가 그저 나갔던 멀끔한 모습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안 돼대장은 못 가.”

 

또다시 대장이 기지를 비우는 날이었다그가 전에 임무를 맡은 뒤 아직 사흘이 채워지지 않았는데도 그는 나갈 채비를 하고 리코의 뺨을 두드렸다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로 눈을 마주쳐주는 게 리코는 더욱 야속했다입을 비죽이고 눈을 글썽거리자 그제야 안쓰러운 듯 웃어준다리코가 이렇게 가지 말라는 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낸 것은 많이 없던 일이라 그런지 스키퍼도 조금 더 마음이 갔다하지만 단호히 문을 열어 걸음을 뗐다다급하게 스키퍼의 소맷부리가 흉터 많은 손에 잡혔다리코가 울먹이며 스키퍼를 붙잡았지만 그의 대장은 기지를 나섰다.


스키퍼와 떨어진 여섯 시간이 지나자 리코는 자신의 이름이 듣고 싶어졌다대장의 목소리로 들리는 리코란 발음이 그리워 눈을 꿈뻑 거렸다스키퍼가 부르는 리코는 그의 귀에 속삭임이었고 가장 짧은 밀어였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사랑할 수 있었다별칭을 짓길 좋아하는 그의 대장이 또박또박한 목소리를 내며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리코에겐 하나의 각별함이자 축복이었다리코그 소리는 너무나도 달콤한 입모양으로 떨어진다리코가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솟아 결국 넘쳐버렸다.

 

 

 

리코는 스키퍼를 더는 보낼 수 없을 것처럼 굴다 어느 순간 그런 모든 행동들을 멈추었다스키퍼가 문 앞에서 코트 깃을 정리하면 단지 동그랗고 파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잘 다녀오겠단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과학자가 말하던 효과가 드디어 나오는구나 하고 스키퍼는 들뜨는 기분과 어쩐지 떨리는 속을 다잡았다스키퍼가 아홉 번의 단독 임무를 가게 된 뒤 거둔 반응이었다이제 마음이 편해지겠어대장은 속으로 안도하고 웃어주었다리코는 스키퍼의 웃음에 시익 따라 웃었다그 얼굴이 보기 좋다고 느껴진 대장이 리코의 어깨를 두드린다그리고 스키퍼는 대원들에게 인사를 나눈 뒤 문을 닫았다과학자와 막내가 스스로의 시간을 처리하기 위해 각자의 일거리로 사라졌을 때 리코는 얼른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겉옷을 챙겼다그는 여전히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뉴욕의 거리는 언제나 붐비었다활기찬 도시니만큼 사람도 많았고 사건도 많은 거리였다스키퍼는 뉴욕의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지만은 않았다오히려 그래서 더욱 아끼는 곳이었다사람들의 발소리는 도로를 박차고 제각각 울리며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다그때 누군가 따라오는 발걸음을 느끼고 스키퍼가 한숨을 내쉬었다복잡한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그 걸음걸이는 귀에 너무나도 익숙해 그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었다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재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횡단보도의 인파 속에 몸을 실었다길을 건너고 한참을 빠르게 걸어 좁은 골목과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 그제야 기척은 그를 찾지 못한다처음부터 따라붙는 것을 눈치채지 못 했던 자신에게 탓을 돌렸다걸음을 느끼고 뛰었던 순간부터 그 속은 계속 저릿했다잠깐의 빠른 움직임에 이렇게 몸이 좋지 않은 것 또한 한숨을 쉴만한 일이었다.그는 뉴욕에 지낸 뒤로 드물게 이 도시가 좁다고 느꼈다골목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가 고개를 숙였다이건 전혀 생각지 못한 경우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스키퍼는 더 먼 곳으로 임무 장소를 선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리코는 습관처럼 대장을 찾아 거실을 나왔다평범한 아침이라면 커피향 속에서 방긋 웃어주는 그가 인사를 건네야 했다최근 들어서는 그런 아침은 자주 반길 수 없었지만그렇지만 오늘은 더욱 평범한 아침이 아니었다대장은 소파에 앉아 있지도 않았고 주방에서 커피를 가지고 나오지도 않았으며 늦게 일어난 리코 대신 현관 앞으로 신문을 찾으러 가지도 않았었다읽는 사람이 없어진 채 차갑게 서리를 맞았던 신문과 주인이 부재중인 컵은 고요하다그의 방과 온 곳을 뒤져보았지만 스키퍼는 어디에도 없었다처음이었다대장이 그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훌쩍 곁을 떠나버린 건 처음임에도 몹시나 최악이었다떨리는 입술을 겨우 깨물며 그가 주저앉았다그리고 리코의 심장이 내려앉았다그의 시선은 둘 데가 없이 스키퍼의 흔적을 찾아 흔들린다.


리코는 그가 도망 갔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머리가 고장 났다는 걸 리코도 알고 있었다대장이 연민을 느끼는 것도받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리코는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곁이 아니라면 숨조차 포기하고 싶어지는 자신을 가련하고 불쌍하게 여기면 차라리 좋겠다고 떠올렸다그런 말을 하는 게 겁이 났지만 스키퍼만이 리코를 겁쟁이로 만드는 존재였다그가 자신의 앞에 있기를리코가 원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바람에 차가워진 코트를 여미며 스키퍼는 뉴저지에서 갈 곳 없는 발을 옮겼다그러다 그의 구두가 길의 가운데에서 멈춘다그는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뒷걸음을 디뎠다리코가 찌푸린 인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스키퍼는 덜덜 떨리는 아래턱이 추위 때문이라고 애써 생각했다리코는 입을 다물고 대장이 자신의 앞까지 걸어오길 기다렸다새파란 시선이 스키퍼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꿰뚫는다.

 

스키퍼는 리코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푹 숙였다겨울비가 그 머리 위로 차게 내렸다






'핥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렉스킵 Shake Shack  (0) 2015.12.25
코왈스킵한스 진짜 연인  (0) 2015.12.25
대냥님 우리 대냥님  (0) 2015.12.12
한스스킵 ver.사푼님  (0) 2015.12.12
Pumped Up Kicks  (0) 2015.12.12
Posted by 판다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