핥는다

사랑해님의 장미

판다멍 2017. 8. 26. 23:53


빨간 장미가 가득한 길은 두 걸음을 사뿐히, 그리고 차분히 만들었다. 담장의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넝쿨지어 있는 꽃들은 잎사귀를 하나 둘 떨어뜨리고도 그 어여쁨에 부족함이 없었다. 떨어진 꽃잎 위로 구둣발을 디디면 풍겨오는 향기는 마치 잘 손질된 정원을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그저 옆에는 좁은 차도가 있고 장미꽃이 만개했을 뿐인 평범한 길거리인데도 그랬다. 늘 걷던 곳은 봄을 맞고 과학자의 감성을 당겨낸다. 따뜻한 햇살마저 소매에 감돌았다.

 

시선 안으로 가득 피어나는 붉은색은 그가 잘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대장은 본인의 취향과 대조되는 붉은색의 타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지난 번 자신의 손으로 대장의 목에 사분히 매어졌다는 걸 그는 기억했다. 논리적이지 못한 연상법은 어쩌면 그가 붉은색과 잘 어울렸기 때문일 거란 생각에 코왈스키는 꽃집 앞에서 지갑을 열었고, 두 가지를 합리화해냈다. 첫 번째로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꽃을 보며 대장을 떠올리는 것과, 두 번째로는 지금 가득한 꽃다발을 한 품에 안아드는 일이었다. 이유는 대장이 장미와 어울리기 때문에. 하지만 그의 표정은 분명 사랑에 빠진 연인이었다.

 

안고 온 꽃은 기지 안 대장의 표정과는 달랐다. 코왈스키는 그 다른 색감에 사들고 온 설렘을 후회할 것 같았다. 대장은 그의 예감대로 꽃에 대해 의문을 내놓았다. 그 얘기가 당연하게, 품 안의 화사함은 어디에 두어도 차가운 벽의 기지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가 맞았다. 예감에 대응하지 못한 그는 해야 할 말을 가늠할 수 없었다. 꽃다발이 그의 뒤춤에서 감추어졌다. 아니, 저는. 대장의 시선은 그 눈의 색과 같다. 그제야 손에서 더듬어지는 다발이, 어떤 말을 하고 있었는지 확연하게 들려왔다. 자신이 지금 한 짓은 대장을 위해 장미꽃을 사온 것이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걸 대장의 앞에서 토로할 순 없었다. 그가 마음을 꾹 눌러 삼키었다. 긴 화병에 그 중 한 송이만을 집어 꽂아놓는다. 꽃집 앞을 지나는데 오늘이 로즈데이라고 하더군요. 그가 제법 감성적인 과학자란 것을 대장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 눈빛이 조금 느슨하게 그러려니 하며 의아함을 놓는다. 그리고 장미 한 송이는 삶에 같이 있어주어서 감사하다는 뜻이라고 했고요. 뒤로 가려진 다발은 꽃 한 송이가 사라졌다고 장미 꽃다발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흔한 말로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아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로지 표현할 수 있는 줄기였다. 감사하다는 것. 그 얘기만으로 붉은 꽃은 대장의 눈 속에 차분히 담겨질 수 있었다. 알겠네. 그는 그 감사의 꽃 하나를 두고 와야 했다.

 

들어온 방 안에서 그는 손에 든 꽃다발이 이제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은 다발을 풀었고 꽃들은 데스크 위로 흩어졌다. 꽉 조였던 묶음에서 벗어난 향기는 아직 그의 주변 밖으로 달아나지는 않았다. 그의 단어 또한 그랬다. 어떤 다짐으로 엮었었는지 모를 진심들은 헤집어졌어도 여전히 붉은 색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꽃잎을 스치는 손에 감기었던 장밋빛 타이는 대장에게서 매듭지어졌었다. 그 손길을 차분하게 보던 파란 시선이 그의 눈앞과 온 생각을 붉게 물들인다. , 어쩜……. 내가 어떤 꽃이든 의미를 두지 않고 드릴 수 있었다면. 그는 얼굴이 덥게 느껴졌다. 그 열기는 어떤 것으로 피어올라 장미의 꽃잎 하나하나를 하트모양으로 바꾸어놓는다. 그것에 그의 감정이 실려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순 없었다. 꽃은 피어났고 향기는 선명했다. 그렇게 로즈데이가 끝나갔다.

 

 

 

 

 

 

 

사랑해님이 쓰신 것을 저의 색으로 바꾸었다 생각하고 써보았습니다. 원작 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부풀려 진행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저의 문체로 표현한다는 데에 충실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충분히 아름답고 잘 짜인 완벽한 글에 붓을 대는 건 조금 부끄럽고 걱정스러웠어요. 훼손한다는 느낌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그대로가 정말 근사했거든요. 장미를 처음 읽었을 때에도 정말 멋진 표현, 문장과 글이라고 느꼈지만 제가 다시 써보면서 이 글에 완전한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쓸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어요. 선뜻 말해주시고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장미의 향만큼이나 달콤한 기분이었고 붉은 빛깔만큼 들떴었습니다. 사랑해님의 코왈스킵은 너무 최고예요. 사랑해님 사랑해!


사랑해님의 장미-> http://problemwork.tistory.com/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