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왈스킵 질투
리코의 손은 언제나 그렇듯이 대장의 셔츠 안을 헤집고 있었다. 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장을 끌어안은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그래, 좋기도 하시겠지. 코왈스키는 그 못마땅한 꼴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불쾌한 기분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아무리 저 손이 대장의 민감한 곳을 부러 노리지 않고, 또 가운데도리로 대장에게 치근대지 않는다 해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참 익숙해진 대장은 그를 아이 다루듯 하며 자신을 껴안도록 내버려둔다. 옆의 막내 또한 조르르 달려와 대장의 옆을 꿰찼다. 스키퍼는 어느새 다가온 프라이빗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멀찍이 앉아서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코왈스키와 눈이 마주쳤다. 코왈스키는 대장이 두 사람의 재롱을 받아주는 게 몹시 맘에 들지 않았다. 달라붙는 둘이 떫은 것을 둘째로 친다고 해도 스키퍼는, 애초에, 코왈스키에게는, 저 정도로, 다정히 대해주지 않았다! 코왈스키는 이제야 자신을 쳐다본 대장에게 시선을 휙 거두어버리곤 실험실로 들어가 버렸다.
스키퍼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때 눈치 챘다. 분명 저 녀석은 언제나 오른쪽 옆에 서길 원하며 무얼 하던지 자신만만한 얼굴로 칭찬을 바라지 않았던가. 근래에 들어서는 기대를 잔뜩 띄운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는 저렇게 비뚤어진 상태로 자신을 대하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그게 아마…, 음, 아마. 아마도 꽤 되었을 거라고 스키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코가 자신을 폭 끌어안자 순박한 파란색의 눈이 보인다. 대장인 그는 군인의 표정을 풀고 리코를 도닥거렸다. 그에게 몇 없는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리코의 손이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간지럽게 입술을 대면 조금 난감했지만 잔뜩 풀어진 어린 강아지의 얼굴을 보면서는 혼을 내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등을 어루만지고 막내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을 설명하고 들떠서 젠체하던 부관은 정말 아무 말이 없었다. 스키퍼 그가 이것을 알아보기 시작하자 코왈스키의 달라진 태도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말을 시켜보아도 뚱해진 목소리는 주관식 단답형 문제를 채우듯 몇 글자가 다였다. 때때로는 대장의 말꼬리를 잡아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건 보통 스키퍼가 리코에게 굉장히 잘했다는 얘기를 건넬 때 이어졌다. 하지만 코왈스키 또한 무심한 대장이 원망스러웠다. 분명 볼멘 상태의 자신을 확인했을 텐데도 별다른 것 없이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심지어 며칠 전 간만에 찾아온 단둘의 외출에서도 대장은 그의 마음에 사포질을 해댔다.
“기다리게 코왈스키, 잠깐 근처 가게를 들려야겠군.”
“…늦었습니다. 나중에 가시죠.”
“나온 김에 프라이빗에게 줄 윙키나 사러가야겠어.”
“…….”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제 표정이 뭐가요? 네 그럼요, 들려야죠. 대장님께서 그렇게나 아끼시는 막내인데. 어련하시겠습니까.”
“음, 맞아. 리코에게 줄 것도 사야겠군, 편애는 안 되니까.”
“……!”
저는요! 나는요! 그는 울컥한 속으로만 소리쳤다. 코왈스키를 아주 토라질 대로 토라지게 만든 스키퍼는 부관이 왜 자신의 옆에 서지 않는지 알지 못했다. 누가 보아도 단번에 알 정도로 코왈스키는 스키퍼를 피하고 있었다. 저녁시간을 준비하는 부관의 곁에 스키퍼가 서면 그는 손에 들린 접시를 다 내려놓고 평소 본 적 없던 쌩한 눈빛으로 자릴 떠났다. 임무 중에서도 맨 앞의 대장과 멀찍이 떨어져서 가장 뒤로 대열을 바꾼 채 그를 따라갔다. 작전설명이 잘 들리지 않아 옆으로 오라는 말에도 그는, 싫은데요, 전 여기 있겠습니다. 무엇이 문제냐는 듯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로 이 녀석이 요즘 왜 이러는 걸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코왈스키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버리고, 어쩌다 실험실에 들어온다면 주방으로, 또 거기에 대장이 은근슬쩍 주방으로 올 때는 다시 실험실로 갔다. 스키퍼는 결국 열이 받아 입을 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 요즘 날 피하는 거 같아.”
코왈스키는 뒤돌아 대장을 슬쩍 바라보더니 상당히 볼멘 목소리로 비죽였다.
“그거 기분 탓 아니십니다.”
또다시 휙 가버리는 부관 녀석에 스키퍼는 기가 찬 숨을 허, 하고 뱉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유독 무거워졌다. 식탁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던 대장의 입에서는 끙끙 앓는 소리도 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새벽까지 고민하던 그의 앞으로 코왈스키가 지나간다. 머그컵을 들고 물이라도 마시러 온 그는 그 자리에 있지 않던 대장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흠흠 거리며 대장을 몰래 엿보자 어쩐지 그는 표정이 좋지 않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어둑어둑한 주변에 둘러싸여 있었다. 어서 더운 물을 받아 들어가려던 부관은 자신이 대장의 심기를 끝까지 건드렸나 싶어 긴장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를 부른다.
“……코왈스키.”
“힉…!”
질겁한 그는 다시 서둘러 표정을 고치곤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니, 큼큼 말씀하세요. 대장은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다시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앉아봐. 코왈스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는 만약 대장이 그에게 뭐라도 추궁한다면 무조건 잘못을 빌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대체 자신이 그동안 왜 그랬을까 자책과 후회의 시간을 겸상하려하며 스키퍼의 앞에 앉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괸 채로 부관을 보고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코왈스키의 심장이 더욱 바빠질 만한 모습이었다. 고개를 숙여 컵만 바라보다 죄송하단 말로 입을 떼려는데, 스키퍼가 말한다.
“미안하네.”
그 말을 듣고 떼려던 입을 다물었다. 대장의 목소리가 자신을 혼내려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니 갑자기 설움과 미운 감정이 발치에서부터 올라온다. 비죽 나오려는 입술을 깨물고 인상을 푹 쓰고, 다시 토라져버릴 것 같아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은데 들리던 목소리가 심정을 마저 얘기했다.
“내가 자넬 좋아하는 것 같아.”
부관은 놀랐다. 너무나. 정말 너무나 놀라서 그는, 대장님이 지금 어떤 소리를 하시는 건가, 아니면 내 귀가 이상이 있을까,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내가 졸린 걸까 대장님이 졸리신 걸까. 아니, 아니지. 좋아한다는 게 꼭 그런 게 아니잖아. 이런 멍청한 코왈스키! 속으로 오만가지의 대화가 이어졌다. 부끄러운 걸 내색하는 게 부끄러워져 고개를 들 수가 없는데 그의 스키퍼는 계속 조근조근 얘기를 잇는다.
“자네가 날 피할 때 기분이 좋지 않더군. 내가 예민하게 구는 줄로만 알았는데 착각도 아니라니 계속 생각해봤네.”
코왈스키의 귓가로 들리는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고뇌에 찬, 그렇지만 어딘가 토로해버리고 만 투정이 담긴.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는 문득 스키퍼의 표정이 궁금했다. 그래도 아직 고개를 들 수는 없었다. 코왈스키의 얼굴이 그 단어로 여태 화끈거렸기 때문에.
“왜일까.”
대장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아래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식탁위에 내려앉는다.
“자네는 분명 내가 리코와 프라이빗을 귀여워하는 걸 시샘한 거겠지?”
정확한 이야기였지만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그것을 알고도 몰라봐준 척한 스키퍼가 미워 코왈스키는 슬픈 숨을 뱉었다.
“그런데 코왈스키 자넨 귀엽지가 않아.”
지금에라도 알고 있습니다, 하며 자리를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는. 대장을 마주한 새벽의 시간이 이미 너무 좋았다. 와중에도 패배한 감정에 그는 입술을 물었다.
“내가 자네를 남자로 보고 있는가 보더라고.”
코왈스키의 고개가 들려졌다.
“……예?”
“자네를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