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왈스킵한스 진짜 연인
가물어들던 해가 보랏빛 하늘을 풀었다.
스키퍼의 시야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악당의 빔을 맞지 않았거나 블로홀의 실험이 실패했다면 그는 올바른 무력을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막내는 올바른 무력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었겠지만 대장이 잘못된 사람을 공격한 것은 사실이었다. 스키퍼는 광선총의 환한 빛이 그를 둘러싸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썹을 험악하게 찌푸린 채 그의 눈에 보이는 오래된 원수에게 주먹을 날린다. 코왈스키는 그 주먹을 정통으로 가격 당해 배를 감싸며 쿨럭 거렸다. 스키퍼의 주먹이 자신을 맞힐 줄 알았던 한스는 쓰러지는 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곧 스키퍼를 향했다. 특공대의 대장이 시익 웃으며 어깨를 쭉 폈다. 한스는 블로홀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에 제대로만 있다면 일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끝날 테니까.’ 하지만 한스는 가스 불에도 콩을 볶아먹을 일이 없을 거라 코웃음을 쳤었다. 그랬던 그가 박사의 능력에 감탄을 한다. 스키퍼가 수고했다며 한스의 등을 두드렸다. 그는 확실히 자신과 코왈스키를 구분하지 못 했다.
코왈스키가 붙잡은 배를 놓고 허리를 제대로 필 때쯤 한스는 숨을 돌려 고개를 들었다. 블로홀이 건넨 총을 코트의 안감에 숨긴 채 옷을 털고 자리를 뜨는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저만치 걸어가는 그를 발견한 스키퍼가 쫓아가 부관을 잡았다. 한스는 그 파란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당혹스러운 발걸음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스키퍼는 눈썹을 휘며 의아한 입모양을 짓는다.
“자네 어딜 가는 건가, 내 옆에 있지 않고.”
“스키퍼, 내가 가는 게 네게 좋을 텐데.”
그의 팔을 붙들고 있는 손을 한스가 두드렸다. 스키퍼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가 놓아주겠거니 생각한 악당이 숨을 쉬었다. 차가운 저녁 공기에 그의 하얀 숨이 퍼진다. 고개를 숙인 스키퍼의 귀가 빨개져있었다. 작은 입이 열렸다.
“그럴 리가 있나. 자넨 내….”
내 사랑하는 연인인데. 한스의 눈이 크게 뜨여 다시 동그래졌다. 그가 멀리 떨어진 코왈스키를 바라본다. 밝은 갈색에 자리 잡은 동공이 긴장되었다. 그 눈은 한 남자에게 집중해 시선이 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키퍼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코왈스키? 한스의 눈길 끝에 있는 사람의 이름이 불러졌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스키퍼와 눈이 마주치자 망설이지 않고 방긋 웃었다.
스키퍼는 한스에게 수프를 건넸다. 그들은 제법 단란하게 식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스키퍼의 대원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데에 숨김이 없었지만 주먹과 발 대신 소금 병과 냅킨이 오갔으므로 오붓한 저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스가 웃으며 접시를 내려놓은 스키퍼의 손등을 잡아 감사의 의미로 키스했다. 코왈스키와 리코가 동시에 악당에게 눈치를 주며 인상을 구겼다. 사실 오붓한 것은 대장과 한스 둘 뿐이었다. 리코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제일 좋아하는 특별 주문한 알래스카 산 최고급 훈제 연어를 앞에 두고 식탁에 머리를 박았다. 막내 또한 울상이었지만 그 표정은 코왈스키만 못 했다. 코왈스키는 그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못마땅한 얼굴을 지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정말 못났다고 스키퍼는 혀를 찼다. 대장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코왈스키는 수프에 코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지만 그 대신 찬물을 들이켜기로 했다. 대장이 건네준 수프도 아닌 리코가 준 수프에 죽긴 그의 삶이 아까웠다.
그들 자신도 믿기 어렵지만 한스에게 먼저 기지에 있길 요청한 것은 대원들이었다. 대장이 한스를 따라 호보컨까지 갈 뻔했기에 한스는 하룻밤 특공대의 거처에서 묵게 되었다. 한스 또한 자신의 옆에 붙어 친근히 말을 붙이는 스키퍼를 떼어두고 돌아가는 것이 아쉽고도 어려운 일이라, 하룻밤 서로 얌전히 지내지 않겠냐는 대원들의 얘기는 그에게 반가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만족한 악당과는 다르게 대원들은 억지로라도 대장을 떼어놓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한스를 기지로 들이는데 가장 걱정이 없던 프라이빗조차 그랬다.
스키퍼는 당연한 듯이 한스를 오른 편에 두고 평화로이 커피를 마셨다. 가끔 코왈스키를 향해 불쾌한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보아 그의 속이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코왈스키는 도무지 자신을 봐주지 않는 대장을 보며 한 번만이라도 눈을 마주치면 좋겠단 생각을 했지만 이내 대장의 흉흉한 눈빛을 보고선 깨지는 심장을 느꼈다. 모든 것이 다 연인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이코퍼핀 때문이었다. 심지어 대장이 입을 대고 있는 커피도 한스가 준 것이었다. 스키퍼는 언제 이렇게 맛 좋은 커피를 준비했냐며 한스의 등을 다정스레 토닥였다. 그가 발명했을 기계를 찾는다고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한스를 격려하는 그 손길은 코왈스키를 향해야 했었다. 게다가 그에게도 한스의 실력 못지않게 맛있을 커피를 위한 발명품이 있었다. 비록 과학자의 머리에서 구상 중이었을 뿐이지만. 코왈스키는 어서 이 순간들이 지나가버리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가 평소에는 절대 기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란 것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블로홀에게 듣길 열두 시간 동안의 효과가 있을 거라 한스는 말했다. 그가 이것을 순순히 알려준 것으로 보아 대장이 그에게 친분을 표할 때 적의를 품지 않는단 뜻도 되었다. 물론 그건 웃으며 멀쩡한 커피를 건네는 그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스키퍼가 그에게 미소해주었을 때 한스는 코왈스키를 보며 웃는 듯 마는 듯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뭔가 그가 모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코왈스키는 그의 대장이 적에게 상냥함을 보이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얼굴은 더욱 신경이 쓰였다. 블로홀의 실험에 그의 대장이 희생당한 것도, 사실 대장은 적에게 상냥함을 표하지 않는 중이라는 것도 코왈스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한스는 자신을 부관이라 부르는 말에도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그는 자신이 손수 내린 커피로 행복해하는 스키퍼에 만족하지 않고 그 옆을 떠나 부엌에서 어슬렁거렸다. 선반과 찬장을 살펴보며 그가 손댈 만한 것이 있는지 궁리한다. 그리고 없는 살림이라며 그의 혀에서부터 쯧 거리는 소리가 뱉어졌다. 그래도 그가 쉽사리 밀가루와 막내의 코코아를 찾아냈다. 한스의 손에 들린 자신의 간식거리를 보자 프라이빗이 안절부절 했지만 오븐을 살피는 그를 지켜보고 그 빛나는 눈빛에 시름을 덜었다. 막내의 걱정은 주걱을 돌리는 솜씨에 기대로 바뀌었다.
오븐에서 달콤한 냄새가 더운 김과 함께 피어올랐다. 살뜰하게 앞치마를 맨 남자의 주방 장갑을 낀 손이 그 안에서 호두가 박힌 브라우니를 꺼내온다. 향을 맡고 만족한 웃음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한스는 그것을 조금 식힌 뒤 능숙한 손길로 잘라 접시 위에 놓았다. 그가 설탕의 위치를 물었을 때부터 구경 중이었던 리코와 프라이빗은 저절로 침이 넘어가버렸다. 식탁에는 금방 그의 수제 브라우니가 차려졌다. 단것을 먹기에는 늦은 시간이었고 늦은 시간의 단것은 대장이 반기지 않는 종류였지만 그 초콜릿 향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잔뜩 입이 튀어나온 과학자에겐 예외였다. 하지만 대장과 한스는 그에게 권유조차도 하지 않았던 것이 코왈스키의 찌푸린 얼굴을 울상이 되게 만들었다. 한스는 스키퍼에게 포크를 쥐어주는 것보다 자신이 쥐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해냈다. 그가 웃으며 자기란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 포크의 브라우니는 결국 머뭇거리던 스키퍼의 입속으로 얌전히 들어앉았다. 그 광경을 바라본 리코가 브라우니를 씹지 못하더니 집어먹던 손을 내려놓았다. 표정이 경악스럽게 굳어진다. 코왈스키의 흘기던 눈은 그가 뜰 수 있는 가장 큰 눈으로 뜨여졌다. 오로지 막내만이 즐거운 입을 오물거렸다.
“어때, 마음에 드나?”
“그럼. 들고, 말고. 자네 발명품이나 실험하는 것보다 훨씬 좋군.”
코왈스키의 상처받은 고개가 숙여졌다. 그의 안은 이미 몹시 침울해졌어도 그것에 멈추지 않은 채 무엇인가 터져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복장이었을 것이라고, 후에 과학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사랑하는 대장과 연인이 된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다가온 이 시련은 그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그날 밤 스키퍼의 방에는 익숙지 않은 발이 함께 들어왔다. 한스가 그곳에 발을 들인 것은 스키퍼의 희망사항 때문이었으나 그것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드디어 침대가 있는 곳에서 스키퍼와 단둘이 있게 된 한스는 진심으로 기쁘게 눈을 접어 웃었다. 스키퍼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며 그를 방 한가운데로 둔다. 목을 쥔 타이를 풀어 의자에 걸어두고서 셔츠의 단추를 하나둘 풀어내렸다. 한스의 박동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것을 스키퍼가 눈치챘는지 시익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스키퍼의 손은 단추를 마저 풀지 않고 침을 삼키는 목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스의 목에는 다정스러운 팔이 감긴 채 끌어 안겨진다. 오, 스키퍼…. 한스가 목을 축이는 이름을 불렀다. 그러더니 스키퍼의 표정이 잠시 부루퉁해졌다.
“코왈스키. 근데 자네 계속 신경이 쓰였는데, 언제부터 반말이었나?”
스키퍼가 동그란 눈을 맞추며 그에게 물었다. 계속해서 코왈스키라 불린 그가 정적을 끌어온다. 한스는 속이 쓰게 번져와 입을 어떻게 떼어야 할지 몰랐다. 망설이던 그는 작은 목소리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을 감싼 손을 붙잡고 한스가 다시 미소했다.
“제법 오래전부터.”
그래,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반말도 나쁘지 않군. 침대에서는 말이야…. 그의 말끝은 낮아져 속삭임이 되었다. 야릇한 웃음이 손길과 같이 그의 어깨선을 따라 타고 내려온다. 스키퍼는 손끝으로 한스의 셔츠 깃을 간지럽혔다. 매혹적인 푸른색이 조명의 은은한 빛 속에서 넘실거린다. 한스는 숨을 들이켰다. 코왈스키. 내 방에서 자고 가지 않겠나?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리고 벌컥 열린 문 앞에서는 진짜 코왈스키가 있었다. 둘만의 시간을 엎어버리기 위해 그는 다급히 들어와 스키퍼와 한스의 사이를 떨어뜨렸다. 대장은 한스라는 이름을 소리치며 당혹스럽고 민망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과학자가 사납게 인상을 쓴 채로 대장이 말하는 코왈스키의 크라바트를 붙잡았다. 스키퍼가 화를 내거나 말릴 새도 없이 한스는 목이 붙잡혀 거실로 끌려나가야 했다. 코왈스키는 그를 대장에게서 떼어놓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험실에서 케이블 끈을 가져왔다. 그 준비성에 악당이 코웃음을 쳤다. 과학자는 그가 그런 기가 찬 소리를 내든 말든 간에 자비 없이 끈을 조인다. 일을 그르쳤단 얼굴로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자 코왈스키의 눈매가 씰룩였다. 그는 손목이 묶여 소파 구석으로 내몰아졌다.
“이봐, 이건 너무한데.”
소파에 엉덩방아를 찧은 한스가 고개를 뺐다. 하지만 과학자는 역시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방문을 힘껏 닫아 들어가 버린다. 거실을 비추던 빛 한 줄기가 그 방 안으로 함께 쏙 들어가 버려 눈앞이 캄캄했다. 악당은 귀찮은 듯 얕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내 능숙히 답답한 손목을 풀었다. 그가 팔을 죽 뻗어 기지개를 켠 뒤 깍지 낀 손을 머리 뒤에 대고 눕는다. 한스는 검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릿하고 무거운 눈을 감았다 뜬다. 곧 그가 이번엔 긴 숨을 내쉬면서 얼굴을 쓸었다.
찬 새벽이었다. 한스가 코를 훌쩍거리며 깨어났다. 소파에서 일찍 눈을 뜬 그는 어느새 자신의 위에 덮여진 담요를 확인했다. 익숙한 커피 냄새는 이미 부엌을 메우고 한스가 잠들었던 곳까지 다가왔다. 그의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침을 한번 삼키니 쨍한 아픔이 목에서부터 귀까지 울려지는 느낌이었다. 뻐근 거리는 고개를 돌리자 떨어진 식탁 앞에는 이 향에 가장 어울렸던 사람이 있었다. 시야에 녹아들 것 같이 한스는 그를 가만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그에게 모른 척 담요를 엎어줄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아니, 그 인정 많은 막내 놈이 그랬을까. 한스의 무거운 머리가 괜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돌아갔다. 그가 일어나 앉아있어도 스키퍼는 아무렇지 않은 듯 커피만 홀짝였다. 시야가 넓은 특공대장이 적의 동태를 신경 쓰지 않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는 그저 한스가 그의 거실에 있어도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한스가 스키퍼에게서 눈을 떼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먹먹하도록 아픈 목을 쓰다듬었다. 스키퍼가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릴 듣고도 한스는 아직 잠에 취한 눈을 깜빡였다. 그는 멍하니 스키퍼가 없는 곳에 눈을 두었다.
“날 공격하지 않는군.”
“세수도 안 한 얼굴을 마주하긴 싫네.”
목소리가 들릴 줄은 몰랐다. 한스는 속까지 아려와 소파에 다시 누울 생각이었지만 곧 접어버렸다. 그 목소리에 더욱 아린 것 같았어도 그랬다. 이번엔 그를 코왈스키라 부르지는 않았다. 그의 속엔 쥐어짜고 비틀어진 아픔이 가득 찼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은 그것을 더욱 선명히 만들어줄 뿐이라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게 했다. 하필이면 그 숨이 듣고도 그리워지는 이름으로 나온 게 문제였다.
“스키퍼…….”
둘 사이를 메꾸는 것은 공기밖에 없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 따뜻한 향이 부유했다. 한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얼굴을 쓸던 손으로 턱을 괴었다. 한참 동안 홀짝이는 소리가 들렸다. 한스에겐 목소리가 아닌 그것만 들어도 나쁘지 않았다. 스키퍼는 그게 아니었는지 한 모금을 마저 마시고 컵을 입술에 댄 채 얘길 열었다.
“다 기억해. 내가 자네 손을 붙잡고 내 부관 이름을 불렀지.”
“그리고 자네의 연인인 녀석이었고.”
부대의 대장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스는 그 눈빛을 바라봤다. 그가 일어나 느린 걸음으로 다가섰다. 스키퍼는 그런 그를 보고도 커피로 입을 가리고 떼질 않았다. 한스는 웃으며 그가 앞에 있는 식탁에 걸터앉았다. 그와 신경전을 벌이기는 싫었다. 그의 목이 아직 아팠다. 파란 시선이 한스를 흘끗 훔쳐본다. 스키퍼가 입매를 옴쌀 거리며 말하곤 이를 단단히 다물었다. 공기는 벌써 따뜻해졌다.
“난 미안하지 않아.”
“그래? 난 조금 미안하군.”
빈 컵이네. 한스는 스키퍼의 손에서 그가 아끼는 컵을 내려놓았다. 스키퍼의 손 틈새로 한스의 손가락이 파고들어 맞물렸다. 그는 눈을 감고 스키퍼의 볼에 입술을 대었다. 그리고 미끄러져 곧 커피가 닿았던 곳에 부딪친다. 스키퍼는 한스를 쳐다보지 못하던 눈을 감았다. 새파란 것이 눈꺼풀 뒤로 숨었다. 스키퍼의 입술 사이를 열며 한스가 키스했다. 그의 입안에서 커피향이 가득 찼다.
특공대는 적과 친근하게도 아침식사까지 나누고 그를 털 끝 하나 손대지 않은 채 보내주었다. 그건 아마 그가 자신들의 대장을 손대지 않았다는 이유 덕분이었다. 한스가 손대지 않을 리가 없단 것은 스키퍼만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사히도 한스는 기지를 떠났다. 악당을 떠나보내고 두 어린 대원들이 추운 겨울바람에 기지로 들어갔을 때 문 앞에는 코왈스키와 스키퍼 둘만이 남았다. 다시 스키퍼의 오른쪽에 선 코왈스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스키퍼가 걱정스러운 그에게 괜찮으냐며 도닥여준다. 그 상냥한 말에 그는 옆에 있는 연인의 손을 꽈악 잡고 어쩐지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얼굴을 들었다. 그 못난 표정에 대장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코왈스키의 손을 고쳐 잡아 깍지를 끼고, 입술을 깨문 진짜 연인에게 사랑스럽게 입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