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스킵 ver.사푼님
그에겐 꿈같은 일이었다. 폭발로 주변은 연기가 자욱했지만 그것마저 꿈같은 배경이라 할 수 있었다. 연기는 그와 그의 오래전 전우를 휘감고 흩어진다. 한스의 눈이 환희로 가득 찼다. 그 눈앞에서 스키퍼가 친근하게 웃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마치 화사한 꽃잎들로 느껴질 만큼 두근거리는 마음을 잡고 한스는 간신히 마주 미소했다. 모두가 밟고 있는 곳을 폐허와 같이 만들어두고, 오직 그 둘만이 기뻤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에서 그는 스키퍼가 있는 특공대를 해치울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저 그의 공격이 그들의 무료한 하루를 간질일 뿐이라도 그것이 그의 남은 일상이었다. 실패한 204호의 작전을 가다듬으며 그가 스키퍼와 같은 버릇으로, 녹음을 이용해 기록하는 것을 마쳤을 때였다. 그렇게 바라왔던 친구가 그를 찾아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진정한 친구라 웃으며 그를 꼬옥 안아준다. 그의 품 안에서 보드라운 뺨이 기대어졌다. 한스는 그것이 정말로 꿈이라고 생각했다. 녹음기를 황급히 치운 그였지만 웃는 스키퍼의 제안을 거절할리 만무했다.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지극하게도 이 순간을 최고의 기회라고 알아챘다. 그가 다시 스키퍼와 호흡을 나눌 수 있는 더없이 황홀한 기회. 마주 보며 대치하는 것이 아닌 옆에 선 기척은 무척이나 다른 기분이었다고 상기될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천하의 못된 놈에게도 이런 놀라운 선물이 주어진다며, 한스는 그야말로 하늘의 아량에 감탄했다. 물론 그가 착하게 살겠다는 쓸데없는 마음을 먹는 일은 없었지만. 한스는 큰 덩치의 남자를 쥐새끼처럼 도망가게 만드는 스키퍼를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어딘가 조금 다르단 걸 제대로 알고 있어도 마치 전장을 함께 누비던 과거로 돌아간 듯해 설렘이 일었다. 스키퍼는 서로가 함께이기 때문이 아니라 적들을 소탕하는데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지만, 한스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폭발음과 거센 공기의 흐름이 그의 긴 머리를 헝클었다. 소동이 마무리 되는 흐릿한 연기 사이에서 점차 시야가 확실해진다. 그러자 스키퍼의 눈에 띄는 것은 단정함을 방금 전 폭발 속에 두고 온 한스의 머리칼이었다. 거치적거리게 날리는 머리를 슥 쓸어 넘기고 한스는 스키퍼와 마주 섰다. 시선이 그리로 가는 줄도 모르고 스키퍼가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에 기분이 좋아 웃어버린다. 스키퍼는 그가 형편없는 꼴이라고 작게 혀를 찼다. 그래도 웃어주는 한스를 보곤 입 끝이 슬금슬금 올라가는 걸 숨기진 않았다. 기어코 적들을 눈 밖으로 치워버리고 나서야, 이제 숨을 돌릴 수 있겠다 생각한 스키퍼가 한적한 벤치에 앉았다. 바지의 그을음을 툭툭 털어내고 있으니 한스가 다가온다. 스키퍼는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었다.
“이리 와 앉게.”
“뭐?”
“다시 묶어주어야 하잖나?”
그제야 그는 자신의 모습이 스키퍼의 눈에 보이기 부끄러웠다는 걸 알았다. 옆자리를 두드리는 손짓과 방금 전의 당연하게 들린 목소리가 그의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한스는 생각으로 지체하지 않고 얼른 그 옆에 앉았다. 그는 익숙하게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고 스키퍼가 그 등을 보며 몰래 웃었다. 흰 조끼에 붙은 먼지를 손등으로 털고서 곧 끈을 풀었다. 한스는 스키퍼의 손이 느릿하게 머리를 빗어내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눈을 감았다. 소중한 손길이 머리카락 사이로 흩어져버린다. 그는 간질거리는 기분마저 들어서 두근거림을 참아내느라 입술을 닫았다. 정말로, 너무나 오랜만에 갖는 둘의 시간이었다. 손가락의 끝에서 부드럽게 감기는 느낌이 좋아 스키퍼도 전투로 긴장했던 몸에서 힘을 뺀다. 해가 잠기고 있었다. 한스는 눈앞에 스키퍼가 없었지만 물 들은 하늘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감상에 취하는 건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실로 그저 꿈만 같았다. 거칠고 작은 손으로 그의 머리를 모아 쥐고 묶어낸다. 그리고 그 손길이 끝나가는 것을 받아들이며 한스의 입술이 떨렸다. 입안이 저릿한 그 감각은 몹시 좋지 않았다.
“자, 이제 나는 끝났네.”
“고맙군, 스키퍼.”
한스가 눈을 맞추지 못하고 미소 지었다. 스키퍼는 그의 이어지지 않는 다음 행동을 쉽게 눈치챘다. 그가 곧바로 다시 머리를 풀어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묶고 손질하지 않는다. 그 깔끔한 행동이 나올 기미가 없자 스키퍼가 그와 시선을 나누길 시도했다.
“자네는 언제나 다시 풀고 묶었잖아. 늘 그랬는데.”
왜 지금은 그러지 않나?
“이제 네가 또 언제 해줄지 모르니까.”
아까우니 계속 이렇게 있겠네. 아까의 입술보다 조금 더 떨리는 목소리였다. 붉은빛을 받아선지 그 얼굴이 스키퍼의 눈에도 괜스레 애처롭게 보였다.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 위로 노을 진 가을의 하늘은 어두운 저녁에 섞여들고 있었다. 구름이 그 색들을 둘러 감았다. 스키퍼는 어쩐지 그의 말에 아쉬움을 느꼈다. 잔잔히 하루가 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목이 메여와 입을 떼기가 무거웠지만 스키퍼는 그를 가엾게 만들기는 싫었다. 그의 어깨에 스키퍼가 뺨을 댔다. 오전에서처럼 진정한 친구이기 때문은 아녔다.
“왜 그런 생각을 하나.”
내가 언제든 또 묶어주면 되는걸. 팔을 그의 허리에 살풋 두르고 스키퍼는 한스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시선이 잠겨있는 그에게 고개를 들어 입을 맞춰주었다. 한스의 볼에서 입술이 잠시 닿았다 떼어지고 그는 벌써부터 속에서 그리움이 샘솟았다. 한스의 입매가 단단해진다. 울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참으려 이를 꽉 물었다. 악랄한 그도 이 순간엔 울음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런 솜씨지만 말이야. 스키퍼가 슬며시 웃었다. 그가 겨우 스키퍼를 바라보자 그 얼굴엔 노을이 감돌았다. 그도 쌉쌀한 기분을 삼키고 따라 웃는다. 이제 함께 눈을 맞추며 미소할 수 있었지만 이 꿈이 오래가지 않을 거란 건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스키퍼가 그의 머리를 다시 만져주는 것 또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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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가? 정말 못나게도 묶었군.”
“그러게 왜 못난 손재주 가진 놈에게 그런 걸 부탁하나?”
거울을 보며 한스가 큭큭 거렸다. 눈썹에 힘을 주며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모습이 귀여워 일부러 더욱 놀려댄다. 그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머리를 풀었다. 처음이고, 다시 묶으면 되니까. 다음번엔 좀 더 신경 써주게. 손가락으로 스키퍼의 뺨을 두드렸다. 하지만 스키퍼는 뾰로통해진 얼굴로 팔짱을 하곤 토라져 돌아앉았다. 그 입이 비죽이며 나와 있다.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작게 투덜대기도 한다.
“다음번은 무슨…….”
얼굴에서 푸른 낯빛은 사라지고 붉어진 채로만 스키퍼는 시선을 내렸다. 그의 달아오른 귀 끝이 무척 간지러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