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
솔직히 말씀하세요. 제 기술이 믿음직하다는 건 그냥 하시는 말씀 아닙니까? 코왈스키는 팔을 머리보다 높게 뻗으며 말했다. 그의 뒤편에 선 대장은 당황한 듯 허둥지둥 말을 뱉는다. 무슨 소린가 코왈스키. 자네는 그래, 키도 크고 말이야. 끄덕거리며 그가 등을 두드리고자 했지만 코왈스키가 맞아버린 곳은 엉덩이로 의자에 올라선 다리가 휘청거렸다. 얼떨결에 엉덩이를 맞은 과학자보다 놀라버린 대장이 미간을 찌푸린 코왈스키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씩 웃어 보인다. 코왈스키는 눈길을 돌려 다시 전등을 가는 것에 집중했다.
과학자가 퉁명스레 굴고 있긴 했지만, 전구를 갈아 달라 명령하는 것은 여태껏 대장이 했었던 요구치고는 귀여웠기에 코왈스키는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심약한 부인 같은 부탁을 하는 것이 스스로도 부끄러웠던 스키퍼는 부관의 뛰어난 기술력을 새삼 칭찬하며 일을 떠맡겼다. 부관에게 그런 잔일쯤이야 언제든 말할 수 있었지만 스키퍼는 떠맡겼다는 기분을 느껴버렸다. 그가 코왈스키에겐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어 그런 미안한 기분을 받는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 했다. 스키퍼는 평소와 같지 않게, 능력을 과시하는 과학자를 보며 익숙하지 않은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하지만 전구를 교체하는 일이 능력이라고 할 만한 일의 축에도 끼지 않는다는 것은 대장이 모르는 것 같았으므로 코왈스키는 이 점을 함구했다.
대장은 차마 불빛을 담는 전등과 어떤 원리로 작용되는지 이해되지 않는 전기가 무서울 뿐이라고 할 수 없었다. 코왈스키는 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그가 자신을 지탱한다는 걸 느끼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그의 입꼬리가 살풋 올라가는 걸 대장은 다행히도 보지 못 했다. 그가 봤다면 부관이 대장을 한심하게 생각한다고 스키퍼의 어깨가 더욱 처졌을지도 몰랐다. 코왈스키는 교체를 마치고 장갑을 낀 손을 털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몇 분 동안을 높이 올렸던 팔이 저려 어깨를 번갈아 으쓱 거린다. 그는 고생한다는 부관을 위해 시원한 물 한 컵을 가져오는 귀여운 짓까지 해 보였다. 코왈스키가 컵을 내미는 손과 만족한 대장의 표정에 웃음을 참지 못 했다.
“레모네이드는 아니군요.”
“오, 그걸 원하고 있었나? 어쩐다, 절인 레몬이 없는 걸.”
그 말을 들은 부관이 더러운 장갑을 끼고서 귓가로 올라가는 입을 감싸려다 말았다. 하긴, 목 타는 데에는 그것만 한 게 없지. 대장의 끄덕임에 코왈스키가 더욱 웃는다. 그리고 그는 대장을 바라보았다. 부관이 깊게 바라보는 눈길에 스키퍼는 그가 전구 하나 스스로 갈지 못하는 대장을 흉보는 것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곤 생각할 수 없게 코왈스키의 눈은 제법 진지하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빛이었다.스키퍼는 그 눈을 피했다. 못마땅해진 부관은 인상을 쓰다 입을 연다.
“언제쯤 말해주실 겁니까?”
“무슨 말을 원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겁쟁이라 그까짓 걸 못한다는 얘길 듣고 싶은 건가?”
아무도 고문의 트라우마를 겁쟁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울컥한 그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길 원했지만 가까스로 코왈스키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스키퍼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의 목과 등에 흉터 자국이 지워지질 않는다는 걸 부관이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그 흉은 전기 실험을 하던 자신의 손과 비슷한 자국으로 남아, 어떤 방식으로 새겨졌는지는 뻔했다. 게다가 고작 동그란 유리일 뿐인 것을 끼우기 꺼리는 군인은 없었다.
그는 그의 스키퍼가 그것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것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손을 뻗어 대장의 손을 잡는다. 코왈스키는 고개를 숙여 아직도 말라붙은 입을 삼켰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대장의 손등을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