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그 손에 들린 것은 선명한 분홍의 아이스크림이었다. 그것이 체리 맛인지, 딸기 맛인지, 어떤 달콤한 베리류의 색을 넣은 건지는 멀리서는 알 수 없었다. 한스는 한 스쿱 씩 올라간 아이스크림을 그에게 쥐어주었다. 이런 밤중에 대체 저 아이스크림은 어디에서 사왔는지, 한적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은 다정한 연인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아니 좋지 않았다. 대장이 원수와 연인의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살갑게 있는 건 아주 굉장히 즐거운 일일 수 없었다.
다른 어떤 남자라는 것 외에 사실 적이란 건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 그들의 많고 많은 적들 중에서 지금 그의 옆에 앉아있는 놈은 한스였다.스키퍼만을 보기 위해 호보컨에서 맨해튼까지 각종 무기를 들고 늘 출근을 하시는 사이코 퍼핀. 그가 과거에 점심식사와 나들이를 해주지 않았다며 냉동광선 총을 들이민 것은 기억에서 지워질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런 집착을 가진 악당은 결국 대장의 옆을 차지해 몹시도 달콤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 표정은 가득한 사랑에 취해 흡족해하는 사내처럼 입 끝이 귀에 걸려 넘어갈 것만 같다, 얼씨구.
코왈스키가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둘이 쥐고 있는 건 낯간지러울 정도로 눈에 달콤하며 예쁜 분홍색의 아이스크림이었다. 대장은 결코 분홍색의 무언가를 손에 들 만한 사나이가 아니시라는 걸 부관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이다. 마치 정말로, 정말로 데이트를 하는 양 둘이서 다정스레 같은 맛을, 그것도 그래….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부관은 결국 이를 득득 갈았다. 뉴욕 하늘이 비교적 아름다운 별들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그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진풍경이 본인의 발명품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걸 염두 하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뭐, 아무튼 간에. 그 입맛이 쓰게도 로맨틱한 모습들을 가만 보기엔 리코의 안색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대장은 언젠가 대원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잠깐, 방금 품이란 표현을 했었나? 그렇담 자신의 품으로 정정하자. 코왈스키는 흠흠 하는 목과 함께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의 날카로운 눈은 늑대 같은 퍼핀이 자신의 손을 자연스레 대장의 손 근처로 뻗는 것을 발견해냈다. 눈이 부릅떠진 부관은 겨우 스스로를 진정시키면서 알맞은 시기를 재느라 힘을 써야 했다. 그 힘은 대부분 눈으로 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말 다행이게도 우리 훌륭하신 대장님은 타이밍 좋게 운을 떼었다.
“청어도 같이 먹으면 좋은데…, 구해달란 건 아니야.”
그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는 한스는 요란스럽게 벌떡 일어났다. 그의 손이 스키퍼의 어깨를 짚었다. 조금 멀지만 끝내주는 곳을 안 다며 바로 다녀오겠단 좋은 애인스러운 말을 완벽하게 바친다. 기다리라며 웃는 얼굴에 지어지는 대장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드디어 한스가 옆을 떠난 순간이었다. 근사한 타이밍을 잡은 대원들은 작전에 따라 줄리언을 내보냈다. 정말로 어디서 사왔는지 모를, 같은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든 채 등장한 작업남은 한스와 마찬가지로 옆에 앉아 그의 주의를 끌기 시작한다. 준비를 마친 코왈스키가 그들이 대화를 할 동안 대장에게 기계를 연결하기 위해 줄에 의지한 채로 천천히 내려갔다.
네가 좋다고! 알잖아! 줄리언을 반기며 스키퍼가 환하게 웃었다. 그와는 다르게 그가 하는 말로 코왈스키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게 되었다. 세상에 어쩜 저리 다정스러운 말을 하실까 싶어 얄미워질 정도였다. 와중에도 분홍색 아이스크림은 시야에 어른거리고 대장은 참 잘도 피하신다. 작전이 끝나면 줄리언에게 아이스크림의 판매처를 물어야겠단 다짐이 코왈스키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마음이 바뀌었노라, 펭귄이다!”
“허어…!”
물론 대장의 미소와 애정 넘치는 말로 줄리언이 본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넘어가기 전이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