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왈스킵 스무고개
“스무고개, 하실래요…?”
야간잠복임무를 나와 있었지만 목표대상의 동태는 무소식이었다. 깜깜한 곳에서 집중한 채 몇 시간을 기다리기란 쉽지 않았다. 지루하기도 한 일인데다, 코왈스키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적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대장에게 더욱 신경이 갔다. 이렇게 작고 조용한 공간에서 단 둘이 앉아있게 되는 것은 흔하지 않아 그냥 흘러 보낼만한 시간은 아님이 확실했다. 그가 대장이 있는 옆을 힐끔거린다. 하지만 어떤 말로 그에게서 대화를 끌어낼지가 문제였다. 그의 대장과 자신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없다는 걸 코왈스키는 그때야 생각하고 머리를 짚었다. 별다른 주제 없이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 잠시 생각한 끝에 영리한 코왈스키는 답을 내렸다. 심심한 대장께서도 마다하실 확률은 높지 않다. 말이나 한 번 해볼까. 코왈스키는 연필로 괜히 간지러운 뒤통수를 긁적였다.
해봐. 역시, 그의 판단은 틀릴 리가 없었다.
“아, 생물인가요?”
“그래.”
“빵 상자보다 큰가요?”
“그럼.”
코왈스키는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웃는다. 부관은 그와 임무외의 얘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좋았다. 코왈스키는 얼굴이 달아오르기 전에 시선을 돌렸다. 사람인가요? 조금 들 뜬 마음에 그는 커다란 수를 두었다. 사람이지. 코왈스키를 향해 옆을 돌아보는 대장의 오묘한 표정 때문에 코왈스키는 눈이 동그래졌다. 달에도 갔나요? 그럼. 아니, 아니야. 피식 웃는 그가 답을 바꾸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스키퍼는 도리질을 작게 하다말고 코왈스키를 보았다. 눈을 살짝 접어 나른하게 웃어낸다. 아주 잠깐이며 제법 어두웠지만 코왈스키가 그 눈을 놓칠 리 없었다. 대장님이 좋아하시나요?
그래. 아주 좋아하네.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스키퍼는 코왈스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코왈스키의 마음이 게임의 승패와는 다른 쪽으로 조마조마 해, 안달이 났다. 그가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눈빛을 하자 스키퍼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조금만 더 마주보았다면 그 뭔가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생각을 하자 코왈스키는 뺨이 더웠다. 아직 질문은 많이 남아있었다.
“사적인 의미이신가요?”
“완전히 사적이네.”
“사랑을 하고 계신단 말씀이시죠?”
“그렇게 보아도 되겠군.”
“…여성인 가요?”
“아니, 아니야.”
“남자라고요?”
“그래.”
“진심이십니까?”
“자네 이것도 포함되는 거 알지? 아주 진심이야.”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그럼. 자네도 알고 여기 있는 사람 전부 다 알고 있지.”
꿀꺽, 코왈스키는 침을 삼켰다. 여기 있는 사람 전부 다 그의 침 삼키는 소리를 들었을 것만 같았다. 그의 머리는 팽 돌았다. 그럼 이 중에서 있다는 얘긴가? 가슴은 그가 옛적 특공대에 들어오기 위해 뛰었던 100m 달리기보다 쿵덕거렸다.
“얼마만큼 좋아하시는 건가요?”
“흠, 이건 예스 노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아.”
질문 하나 날아갔군. 스키퍼는 큭큭 거리며 웃었다. 대장의 사랑하는 상대에 집중해 자신도 어떤 말을 묻는지 몰랐다. 그는 다시 목을 가다듬고 질문을 신중하게 선택했다. 그의 얼굴에는 의지가 가득하다. 그럼 대장님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람인 건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게다가 그는 분명히 이곳에 있는 사람 중 한명이라고 했다. 그 운 좋은 놈이 누군지 코왈스키는 대장에게 연인과 같은 상대가 생겼단 싸한 기분과 혹시나 싶은 두근거림이 일렁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머릿속의 질문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분명하게 알아내리라. 이제까지 해왔던 임무들보다도 가장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뉴욕에 살고 있나요?”
“그래, 너무 당연한 말이군.”
“머리가 검은색 인가요?”
“검은색 맞네.”
“눈은…, 파란색이고요?”
“아주 파랗지.”
“저희 특공대 안에 있나요?”
“차라리 이걸 먼저 질문하지 그랬나? 사실이야.”
“가장,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
코왈스키는 제법 무리수를 두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검은 머리에 파란 눈은 우리들뿐이었고, 그건 경쟁상대가 2명으로 줄었다는 뜻이었다. 자신을 포함에 3명 중에서 가려낼 질문이 필요했다. 그의 물음을 들은 대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노골적이군. 전혀 많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중에선 제일 많지. 재미있는지 스키퍼는 웃었다. 코왈스키는 그 웃음에 잠시 빠지느라 자신이 들었던 말을 의심했고 곧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 대장께서 진심이신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박동소리가 머리를 가득 메워 이젠 소리가 거슬리지도 않았다. 위 질문으로만 종합해보자면, 대장이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여기, 저희 둘만 있는 이곳에 앉아있는 사람입니까…?”
코왈스키는 떨려오는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자신과 마주친 대장의 눈빛이 농밀했다. 자신의 질문은 서두른 일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감과 대장의 신호들이 지금이 그 때라고 알려주었다.
…맞아.
그의 사고가 터졌다. 세상에, 세상에, 맙소사. 코왈스키는 눈앞이 뱅뱅 도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혼란스러워 눈을 감는 것과 숨 쉬는 것을 순간 잊은 듯했다. 그리고 숨은 어째서 거칠어지는 건지 얼굴이 무척이나 뜨겁다. 뜨겁고 간질간질 하다. 사람이 이런 식의 흥분으로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걸 그는 다시금 깨달았다. 머릿속에선 벌써 그의 대장의 손을 잡은 채 크루즈를 탈취해 마다가스카로의 도피라도 가는 상상들이 그려졌다. 아, 신이시여. 가끔씩 스키퍼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알 수도 없는 장난스런 눈빛에 콩닥거린 것이 자그마치…. 코왈스키의 눈앞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스키퍼가 있고, 또 그에겐 마지막 질문만이 남아있었다. 마지막 물음이자, 그가 말할 답이자, 자신의 이름이었다.
“답, 답은……. 코, 코왈스키…?”
정적이 돌았다. 딩동댕! 하고 웃어줄 것 같은 대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스키퍼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세상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발음이 엉켰었는지도 되짚어봤다. 자신이 혹시 다른 러시아인스럽기라도 한 이름을 대지 않았나, 하지만 분명히 제대로 말했는데? 코왈스키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차고 그 멍해진 머릿속에 스키퍼가 돌을 던진다.
“아니, 세상에. 내가 자네를 왜 좋아하나?”
“네? 그, 하지만.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은 저랑 대장님 뿐이고….”
…저랑 대장님 뿐……. 혹시…. 그의 두근거리는 열기는 식은땀이 되어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위로 둥둥 떠다녔는데 그게 뜬구름이었단 말인가. 그의 마다가스카는커녕 크루즈까지 멀어져, 탈취를 실패한 그는 손목이 묶인 채 수감되어있었다. 바로 착각의 감옥에. 여태까지의 수많은 질문들과 몹시도 상기되었던 자신의 기대감이 슬퍼질 것만 같았다. 똑똑한 그는 운 나쁘게도 예상하는 답이 벌써 나와 있었다. 코왈스키는 제발 이 대답만은 아니기를 눈앞의 대장에게 빌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나일세.”
그리고 대장은 코왈스키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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