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왈스킵 새벽
어느순간 그의 시간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그 사람이 없는 그로 끝이 났다. 그가 이곳에 스스로 안주하길 바라는 것은, 어느 자리도 그를 붙들어 잡지 못하고 그에게 쥐어진 건 무엇이로든지 날아가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에 있는 것은 하염 없이 가벼워서, 그는 자꾸만 손바닥을 바라보곤 했다. 웃기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곳의 위치가 단지 보이기 위한 수단이란 것도 자각할 즈음이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결코 없다고, 코왈스키는 결코라는 말로 생각을 단정했다.
그게 문제였다. 그 '결코'에 모든 것을 토로해버릴 수 있는 기분을 느껴버리고, 딱 그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없기에 그는 냉소적이게 되었다. 어쩌면 줄곧 코왈스키는 이런 기분이라도 이야기 삼아 떠들고 싶었는 지도 몰랐다. 그의 능력과 솜씨가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건 궁색했다. 그래도 그는 그것밖에 할 줄을 몰랐다. 그건 일종의 자신감이었는지 아니면 언제부턴가 지치고 불쌍한 호소가 되었는지. 좋게 생각하자면 과학자의 연구폴더 한아름, 또는 더는 부관으로 만족할 수 없는 코왈스키인 셈이었다.
코왈스키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를 바라보는 자신의 미간은 결코 냉소적이지 못했다. 모든 표정에는 경험이 담겨져 있다고, 그는 어디에선가 들었지만. 그렇지만 이쯤 된다면 투영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그의 경험과 생각은 스키퍼로부터, 아주 정말이지 불행하게도. 그 무게중심에서 이제 코왈스키는 이 시간이 되도록 너무나 많이 스치고 지나와 잔상처가 많았다. 더는 돌아보는 것을 기대하기도 지쳤고, 오른편에서 발을 맞추는 것에도 신물이 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커피 한 잔에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뒤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떠올리고, 그의 주변에는 이미 차고 넘쳤는데 억울한 일이 아닐 리가 없었다. 곁에 있고 싶고, 바라보고 싶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의 결핍은 이 이상 그를 보는 것만으로 채워질 수 없었다. 그는 그 정확한 이유가 스스로 직접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죽어도 스키퍼가 아는 이야기를 그가 직접 입을 열 수 없으니까, 라고 결정지었다.
긴 하루를 고통받도록 그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그는 매일 쓴물을 삼키듯 받아들이곤 했다. 코왈스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책임 질 수 있는게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만큼 다시 그의 손이 가볍다는 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의 새벽은 계속, 계속, 스키퍼로 귀결되었다.
시즌1, 2, 3을 걸친 코왈스키의 캐릭터 변화가 정말 좋아요